정상봉 철학과 교수
정상봉 철학과 교수

언젠가 우리 학교에 강의를 나오시던 외부 인사께서 건대 학생들은 다른 학교 학생들에 비해 순하고 착한 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바로 제 생각으로는 우리 학교가 호수가 있어서 그럴 겁니다. 4년 동안 호수를 바라보며 학교에 다니면 절로 심성이 고와지겠죠. 게다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다니지도 않으니 더 그럴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분은 일리가 있다며 맞장구를 치셨다. 그렇다, 넓은 호수가 펼쳐져 있는 교정은 그만큼 우리의 심성을 함양시켜주는 훌륭한 생활 터전이다.

오래도록 고즈넉한 교정을 오가면서 늘 일감호(一鑑湖)를 보며 지내왔다. 그동안 가끔 청심대(淸心臺) 등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일감호를 바라본 적도 있다. 지난 2년간은 COVID19 상황 때문에 청심대를 포함해 일감호 주변이 폐쇄되었었지만, 최근 방역 규제가 풀리면서 다행히도 본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거울 하나를 뜻하는 일감(一鑑)과 마음을 맑게 한다는 청심(淸心)은 참으로 안성맞춤이다. 김동명시인이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저어 오오.”라고 읊었듯이 우리는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곤 한다. 거울과 같은 맑은 호수는 햇빛이며 구름을 그대로 비춰준다. 그런 호수처럼 우리 마음도 맑아진다면 세상 모든 것을 여실히 바라보는 지혜가 생길 법하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청심대에 앉아 일감호를 바라볼 수 있는 우리 식구들은 참으로 복이 많다고 하겠다.

일감이라는 글자는 남송(南宋) 시대 성리학을 집대성한 유학자 주희(朱熹)가 책을 읽다가 감흥이 일어 지은 두 수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첫수에서 빌어 온 것이다.

 

반무방당일감개 半畝方塘一鑑반뙤기 네모난 연못에 거울 하나 열리니

천광운영공배회 天光雲影共徘徊 햇빛과 드리워진 구름 함께 오가네.

문거나득청여허 問渠那得淸如許 묻노니 어찌 이리도 맑을 수가 있는가

위유원두활수래 爲有源頭活水그야 샘이 있어 물이 콸콸 흘러들기 때문이지.

 

호수가 거울처럼 맑은 것은 활수(活水), 즉 콸콸 물이 흘러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과 씨름하며 학문에 정진함으로써 세상의 진리를 여실히 밝혀낼 수가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이처럼 활수가 있어 일감이 펼쳐진 장면에다가 마음을 맑게 한다는 의미의 청심(淸心)’을 보태 보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어 보인다.

사실 예전에는 대운동장 쪽(지금 새천년관 뒤편 주차장쪽)에 뚜껑을 덮은 우물이 있고, 그 옆에 활수천(活水泉)”이라는 표지석이 있었다. “활수천이라는 우물은 일감호를 맑게 해주는 원천이었다. 그런데 그 우물은 메워지고 활수천이란 표지석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활수천은 학교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또 그것이 상징하는 학문적 의미도 있다. 이점을 염두에 둔다면 활수천복원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북경대의 미명호(未名湖: 아직 이름 짓지 않은 호수)는 노자(老子)의 현학적 분위기가 나고 대만대의 취월호(醉月湖: 달에 취한 호수)는 이백(李白)의 낭만적 느낌을 주는 데 비하여 우리 대학의 일감호는 학문적 순수함이 충만한 듯하다. 차제에 활수천일감호’, 그리고 청심대가 어우러진 교정에서 우리 모두 맑은 마음으로 학문에 매진함으로써 진리 탐구의 지평도 넓히고 또한 국내외적으로 학교의 학문적 위상도 더욱 높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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