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든 동물이든 위급할 때 꼭 필요한 응급약들이 있다. 항생제 진통제 승압제 등의 약들은 대부분 제조가 가능하므로 가격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술이 있고 효능만 입증되었다면 필요한 만큼 만들고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응급상황에 꼭 필요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혈액은 만들어 쓸 수 없다. 내 가족과 같은 반려동물이 대량 출혈이 있거나 갑작스런 빈혈로 사경을 헤맬 때 꼭 필요한 혈액은 오직 누군가의 공여로만 구할 수 있다.

혈액은 특별한 제조기술이 없어도 몸에서 채혈이라는 비교적 간단한 과정을 통해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도움이나 기증 없이는 절대로 만들거나 구할 수 없다. 구하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아이러니한 제제가 바로 혈액인 것이다.

수의 응급 중환자의학과 담당교수로 근무하면서, 급하게 수혈을 필요로 하는 많은 환축들을 봐왔다. 교통사고로 대량 출혈이 발생한 환축, 복강 안의 종양이 터져서 혈복(배 안에 피가 고이는 증상)이 발생한 환축, 용혈성 빈혈로 창백해진 환축 등이다. 이런 경우에는 다른 반려동물의 혈액을 구해서 지체없이 수혈을 실시해야 한다. 무슨 혈액이든지 빠르게 구해서 환자의 생명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혈액을 제공한 동물이 누구이고, 어떤 상황에서 피를 제공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간과할 수밖에 없었다. 의학적 필요성 때문에 외면했었던 불편한 현실을 이제는 제대로 마주하고 해결하겠다는 움직임이 바로 아임도그너(I’M DOgNOR)’ 캠페인이다. 건국대학교와 현대자동차가 공혈견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2019년부터 진행한 반려견 헌혈 캠페인이다.

국내에서 수혈이 필요한 반려견들에게 공급되는 혈액의 대부분은 민간회사에서 채혈을 위해 키워지는 공혈견들로부터 공급된다. 사람들에게 수익을 창출해주기 위해 공혈견들은 반복적으로 피를 뽑히며 사육된다. 이전에 크게 문제가 되었던 열악한 사육환경이 개선되었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이윤을 남겨주기 위해 반복적으로 채혈하고, 피를 사고파는 이 매혈 문화는 윤리적인 부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사람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매혈이 가능했다고 하나, 현재는 법으로 금지된 상태다. 사람처럼 본인의 의지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황에서 매혈을 했음에도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하물며 좁은 케이지에서 오로지 채혈만을 위해 사육되는 공혈견들이라면 어떻겠는가. 따라서 매혈의 필요성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공혈견의 삶을 해방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헌혈 참여가 필요하다.

건국대학교 부속 동물병원에서는 2019년부터 반려견 헌혈을 진행해왔다. 헌혈이 끝난 후 대기하는 반려견의 보호자들을 보면 만족스럽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자부심과 긍지가 느껴진다. 단순히 자신의 반려견이 건강검진을 무료로 받았다고, 또 헌혈 후 선물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장난꾸러기인 줄만 알았던 우리 강아지가 늠름하게 다른 개들을 돕고, 다른 생명을 살린다는 사실, 바로 이 대견한 영웅이 나의 개라는 뿌듯함과 타인을 돕는 데서 오는 기쁨이었다.

수혈이 필요한 위급상황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이제는 그 혈액이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좁은 케이지에서 채혈만을 위해 키워지는 공혈견과 가족의 사랑과 응원을 받으며 혈액을 기부하는 헌혈 영웅을 비교해 보라. 모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식은 동일하지 않은가. 이제 누군가의 강제적인 희생이 아닌 따뜻한 기부를 통한 수혈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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