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 예술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학과 강사
김세희 예술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학과 강사

우리는 어머니 태내의 모성적 낙원을 상실하며 태어나고, 그러한 근본적인 상 실과 삶 속의 점진적인 고통을 감내하며 죽음이라는 자기 존재의 종말을 향해 나아간다. 그것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숙명이다. 원시 인류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상실은 초월적인 신적 질서의 일부였으며, 그들은 기아와 질병, 재해, 전쟁 등 무수한 변수를 통해 찾아오는 죽음을 일상의 삶에 나타나는 실제로 해 석하고 인정하였다. 시간이 흘러 문명과 과학의 힘을 통해 이러한 자연의 개입 을 철저히 배제해나간 현대인에게 죽음과 상실은 망각을 통해 삶에서 유배되었 다. 그러나 죽음이 사건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 그것은 삶의 서사를 무너뜨리 는 균열이자, 증상적 외상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체험된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자신에게 운명지어진 죽음을 환기시키는 타인의 고통과 상실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것은 타인의 상실을 능동적으로 자신 의 것으로 받아들여 애도하는 것과 그것을 평가절하하고 자신으로부터 떨어트 리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로 나타난다. 타인의 상실과 고통을 자신과 연결하는 것도,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끊어내는 것도, 모두 죽음에 대한 자아의 방어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상반된 두 가지 태도는 윤리적으로 선한 것 과 악한 것, 혹은 올바름과 그릇된 것으로 구분되어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타 인의 고통과 자신을 가깝게 연결하며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얻기도 하고, 고통을 피해 타인과의 관계를 끊어내게 되면서 인간적인 감정과 공감을 상실하 기도 한다. 이러한 대립적인 태도의 한 극단을 취하는 것은 균형을 잃고 치우쳐 서 외적인 것에 자아를 내어 맡기고 집단적 태도에 스스로를 휘둘리게 만든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첨예한 대립 속에 살아가며, 오늘날 사회와 문화 전반에 휘 몰아치는 양극단의 이념은 우리를 내부에서부터 분열시킨다. 사회는 인간 개개 인이 보편적 의식과 자아를 가진 존재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서로 대립하는 이 념들의 원천이 되는 근원적 갈등이 우리 안에 내재하여 있다. 인간은 자연 속의 독립된 한 개체로 태어나지만, 사회에서 성장하며 타자를 비롯한 모든 외부환 경을 내면화하며 사회적인 존재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한 사람의 마음에는 자 연으로부터 타고난 개별체로서의 정신과 사회로부터 부여된 집단 속의 정신이 동시에 존재하며, 이처럼 하나의 존재는 운명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내면의 양 극성을 견디고 조율하며 살아간다.

옳고 그름을 정의하려는 사회의 양극적 메시지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쩌면 내가 대립하는 가치들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쳐있는 상태인 것은 아닌 지, 그래서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가치와 의미를 생 각하고 만들어가고 있는가? 아니면 이념이 나를 살아내고 있는 것인가? 고민 해보아야 한다.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모든 목소리들과의 투쟁을 통과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 안의 비극에 슬퍼하고 또 분노하면서 사람들을

 묶고 갈라내는 하나의 이념에 쉽사리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내어 맡기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서 상실과 죽음을 직면하고 고통과 이념 을 넘어서는 고유한 자신을 이루어갈 수도 있다.

만약 사회라는 큰 울타리에서 비롯된 사건을 통해 오히려 자기 자신과 사랑하 는 사람들을 담은 작은 울타리를 먼저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상실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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