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끝난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가 떠오르는 봄입니다. 사방이 벚꽃 만발입니다. 꽃이 피면 분분히 떨어지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드네요. 교수인 저도 수업을 땡땡이 치고 꽃구경하러 떠나고 싶고 특히나 벚꽃만 보면 대학시절 봄 학기가 생각납니다.

한 번도 수업을 빠진 적 없던 새내기 시절 봄 학기, 복학생 선배들의 달콤한 이야기에 그만 어린이대공원 벚꽃놀이를 하러 갔답니다. “대학생이 그 정도 낭만은 있어야 되지 않느냐, 강의실 공부가 전부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선택한 시간을 사는 게 지성인의 모습이라고 속삭이던 선배들의 독려에 힘입어 언어학개론 시간에 신나게 꽃구경을 갔던 겁니다. 아마 심장의 색깔이 벚꽃보다 더 진했을 겁니다. 얼마나 콩딱 콩딱 심장이 뛰던지 큰일이 날것처럼 걱정이었지만 막걸리 한 사발이 곧 위로를 해주었지요.

머피의 법칙은 정말 존재하는가 봅니다. 그날따라 과제가 나왔고, 과제 제출을 위해 선배들한테 담당교수님 이름을 물어본 겁니다. 그때는 선배들을 모두 형이라고 불렀답니다. “, 교수님 이름이 뭐예요?”, “넌 교수님 이름도 모르냐? 구관조 교수님이야, 다음부터는 교수님 성함은 기억해야지.”, “, 고맙습니다.“

그리고는 과제 겉표지에 담당교수 구관조 교수님이라고 표기하고 제출했지요. 한 치도 선배들이 장난을 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과제 제출 다음 시간, 담당교수님에게 가볍게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담당교수 이름을 모르냐고, 당신의 이름은 구현정 교수라고 하셨고, 그 학기 열심히 공부를 하긴 했으나, C+이 나왔습니다. “벚꽃-구관조-어린이대공원-C+”, 제 봄날의 기억입니다만 저의 스물 하나였고, 스물 다섯이었던 그 날들은 너무나 찬란했습니다.

학점은 나오지 않았지만, 배운 것도 얻은 것도 많은 봄이었습니다. 모든 일의 전 후에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공적 문서 또는 이에 준하는 글을 작성 할 때에는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 확인을 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하나 더, 어떤 선택이든 그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책임을 질 준비가 되었다면 무슨 선택이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날 이후 벚꽃이 서른 번도 훨씬 넘게 핀 요즘, 학생들에게 교양 담당 교수님의 성함을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잘 모르겠습니다.”,”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며 웃음과 함께 대답을 합니다. 청문회도 아닌데, 청문회가 떠오르고, 이어 그날의 교수님과 선배들의 질타도 기억이 나며 저 또한 웃음이 난답니다. 청춘은 그런가 봐요. 그 시절엔 뭘 기억하며 살았을까요?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담고 있고 있어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로 다가가기 위해 노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억할 것이 많은 세상이라 모든 걸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세상과 닿아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는 습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새 학기에는 한 자리에 앉은 학우와 선배, 그리고 교수님들의 이름을 기억해보기로 해요. 결국, 사람이 꽃이니까요.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