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의 역사는 오래됐다.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던 선덕여왕 시기인 640년부터 당나라에 처음 유학생을 보냈다. 최치원 같은 인물도 육두품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했는데, 그의 12세였다. 당나라는 한자 문명권의 중심답게 여러 나라에서 유학생을 받았다. 유학생을 위한 기숙사인 ‘신라관’도 지어주고, 국가 장학금도 지급했다. 외국인을 위한 과거 시험으로서 ‘빈공과(賓貢科)’도 마련했다. 발해와 통일신라가 공존하던 남북국 시대에는, 이번 빈공과 장원이 신라에서 나왔으니, 다음 해엔 발해 출신으로 장원을 삼는 식으로 두 나라의 관계도 세심히 배려했다.
그러나 당나라는 외국 출신 빈공과 급제생들을 자국의 중책에 채용하지는 않았다. 이들의 사회적 성취는 유리 천장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최치원도 하위직을 떠돌다 신라로 돌아왔다. 이는 자국의 문화를 주변으로 확산시키는 데 중점을 둔 당나라의 제국 경영 방식에 기인한다. 말하자면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친 신라의 인재는 배운 것을 바탕으로 신라에 돌아가 신라 문화를 변모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현재 건국대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많이 있다. 한국의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을 예로 들면,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베트남, 중국 등의 국가 출신이며, 학부 고전문학사 수업은 한국 학생을 비롯해 일본, 베트남, 중국, 말레이시아 등 5개국 학생들이 함께 듣는다. 이미 건국대는 세계화됐다. 외국인 학생들로 인해 교수들의 수업 부담은 가중됐지만, 보람과 자부심도 크다. 다국적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경험만으로도 한국 학생들은 세계 체험을 하며 우리는 세계시민의 자질을 함양하게 한다.
그러나 종종 재학 중인 외국인들과 상담하며 이들에게 친한 한국인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한국 학생들에게 이들은 의사소통이 어려운 답답한 상대이자, 어쩌다 한 조를 이뤄 과제를 행할 때는 허수일 뿐이다. 학생회 활동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늘 예외 같은 존재여서 자국의 학생들과 어울리며 자국어로만 소통한다.
한국 학생과 하나의 학적(學籍)으로, 한 공간으로 모아두기만 한다고 절로 교류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개별 교수자의 역량에 맡기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한국 학생과 외국인 학생이 호혜적으로 어울릴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주자. 외국인의 적응을 돕고 언어를 가르쳐주는 시혜적 정책은 오히려 한국인의 마음을 닫을 뿐이다. 서로 배우고 유익함을 느끼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외국인에게 묻자. 너희 나라의 경우는 어떤지. 한국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국인에게 자국의 문화를 설명하고, 두 문화를 비교하며, 그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가질 때 한국인이 귀 기울이며 배우려 할 것이다.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어로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한국 학생들은 차이를 배우며 이질적인 문화와 공존하는 방식을 체득해야 한다. 건국대가 이러한 세계화 체험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외국인을 위한 시혜적 정책을 넘어 외국인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호혜적 프로그램이나 교육 방안이 필요하다. 외국 학생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 만들어 내는 교육, 한국 학생들에게 배움과 유익함을 줘 외국 학생들을 환대할 수 있는 교육이 진정한 세계시민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