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후 상허교양대학 교수
이관후 상허교양대학 교수

 

저는 학번으로 94입니다. 내년이면 '대학'에 온 지 30년이 됩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도 기껏해야 20년쯤 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강의 시간에 종종 '내가 자네들처럼 학생이었을 때는~'을 시전 했었는데, 최근에에 '아뿔싸'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회의가 있어서 우연히 대학생 때 종종 갔던 골목길에 들어섰습니다. 한쪽은 완전히 변해서 높은 고층 빌딩들이 올라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예전의 붉은색 단독 주택들 몇 채가 겨우 살아남아 언덕길에 붙어있었습니다. 그 광경이 제 삶처럼 느껴졌습니다. 삶의 한쪽에는 7살, 12살, 16살, 20살, 23살 때의 기억과 정체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다른 한쪽에는 스물 댓살 넘어 살아온 또 다른 인생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바뀜과 머묾이 교차하고, 혼란스럽고 그로테스크하지만 그대로 사실인 하나의 역사, 그런 게 누구나의 삶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깨달음은, 제가 그곳을 29년 전에 걸었다는 사실이었지요. 그러니까 '내가 대학생 때는 말이야~'라고 말한 주체는 저를 기준으로 하면 65학번 정도 되는 겁니다. 94년도의 저에게 65년도의 삶이란 짐작할 수도 없는 상상 너머의 시간이지요. 저는 '문돌이' 출신이라서 과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상대성 이론'을 이런 때에나 은유로 이해합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지만, 시간의 속도가 다른 비동시성이 존재하고, 그런 비동시적인 여러 개의 평행 우주가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세계. 세계가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죠.

우리의 세계란 하나하나의 우주들이 모여서 부딪치고, 비껴가고, 섞이는, 그런 시공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어떤 우주들은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왔지만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서 가까운 거리에서 맴돌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에 서로의 중력권을 이탈해서 완전히 다른 길로 가기도 하고, 아니면 하나의 우주로 합쳐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 오래전 골목길에서 머뭇거렸던 이유는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았던 한 사람과의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억은 저의 우주에서 오래전 스쳐 지난 혜성의 궤적처럼, 혹은 이미 산산이 폭발하여 흩어진 성간 구름처럼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의 우주는 어떤 행성들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돈은 중요합니다. 이 자본주의 세계가 변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항상 돈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것이 이 우주를 완전히 결정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해야 합니다. 돈은 수단으로써 무엇보다 강력하지만,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는 희한한 요소입니다.

'직장인보다 직업인이 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회사에 충성하기보다는 언제든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저는 거기에 '자기 일과 삶에 대해 하나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더하고 싶습니다. 직업을 뜻한 영어 단어 vocation의 어원은 '소명'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하는 일, 나에게 주어진 일, 내가 선택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우주에서 중요한 행성입니다.

저는 30년 전 사람입니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우리의 우주는 겹쳐 있지만, 또 분명히 다른 우주입니다. 여러분에게 지금은 각자의 우주를 어떤 행성들로 채워 나갈지를 정하는 시기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모든 우주는 모두 아름답고 자기 완결적이며, 다른 우주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모든 별이 그렇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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