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가 청와대에서 검은 돈을 받았다는 소식은 국민적인 충격을 넘어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확인시켜주었다고 생각한다. 입만 열면 도덕성을 들먹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거나, 진보 정권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의 결정적인 증거라고 쾌재를 부르는 차원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역사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내일에 대비해야 할 때이다.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반혁명 세력, 특히 귀족주의자들은 돈의 평등주의적 폐해를 격렬하게 비난했었다. 신의 섭리이며 역사적 당위인 신분제와 귀족주의를 가장 크게 위협한 것이 바로 돈이었기 때문이다. 돈은 프랑스혁명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0년이 지난 오늘날엔 거꾸로 돈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면서 새로운 신분제와 귀족주의를 선동하고 있다. 구체제에서 신분이 모든 것을 좌우했듯이, 이제는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여권과 야권을 가리지 않은 ‘박연차 비자금’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돈의 독재는 역사와 인간의 삶 자체를 희화화한다. 해방 이후 부정과 부패에서 자유로운 정권은 없었고, 부정과 부패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하지 않은 대통령도 없었다.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 발 경제위기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무수한 직원을 해고하는 회사가 임원들에게는 천문학적인 보수를 지급하고 있지 않은가.

돈의 독재가 획책하는 새로운 신분제와 귀족주의의 부활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겨우 200년 밖에 안 된 제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서양에서는 최근 200년, 우리나라에서는 60년을 제외하고는 역사 전체가 신분제와 귀족주의에 기초한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이제 방금 싹을 내렸을 뿐이다.

국민이 직접 손으로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이 검은 돈에 연루될 때마다, 돈의 독재의 힘을 절감하고 민주주의에 대해 회의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민주주의는 신분제와 귀족주의보다는 ‘덜 나쁜’ 제도라는 점이 입증되었다. 돈의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라는 어린 싹을 지켜서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내는 것은 우리 모두, 특히 내일을 이끌어갈 대학생들의 의무이다. 대학생들은 진보와 보수라는 편 가르기를 넘어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말 멀고도 험한 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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