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강신청 중 지난학기와 확연히 차이가 난 것이 영어강의 증가다. 지난 호 <건대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대학본부는 영어강의를 학과 당 4개에서 7개로 늘릴 것을 요구했고 필자가 속한 단과대학의 영어강의도 지난 학기 8개에서 13개로 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학 다니면서 뭘 했기에 영어강의에 불만을 가지냐고 하면 대답할 말이 없지만, 현재 대학들의 무분별한 영어강의 증설이 분명 정상은 아니라고 본다.

전공영어강의 자체의 질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는 않겠다. 본인의 실력이 그 정도에 미치지 못할 뿐더러 혹시나 영어강의를 열심히 준비하는 교수님들의 열의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첫 번째 문제는 7개로 정한 기준이다. 7개로 늘린 이유가 없다고 믿고 싶지 않지만 그 기준을 아는 구성원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만약 구체적인 근거 없이 정한 거라면 문제는 더욱 크다.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우리대학에 마스터플랜이 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2-3년 주기로 각종 플랜을 발표하지만 그 안에서 큰 줄기를 찾기는 쉽지 않다. '5대 사학 진입'이 '교육적' 마스터플랜일까?

두 번째 문제는 이런 영어강의 증설이 그 어떤 여론 수렴도 없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전공실력이 아닌 영어실력에 따른 학습능력 차이, 영어로 인한 수업선택권 제한 등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수업방식이 바뀐 걸로 끝나지 않는다. 또 이런 학생들과 수업을 해야 하는 교수들의 입장도 마찬가지지만 학생과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대학본부가 1년에 평균 800여 만원을 대학에 납부하는 학생들을 대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영어강의의 효율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강의를 추진하는 대학본부는 영어실력향상, 전공언어습득, 취업대비를 영어강의의 장점으로 꼽는다. 물론 영어강의를 들으면 어느 정도의 영어실력은 향상되는 것이 사실이다. 수업을 듣기 위해 또다시 영어 공부를 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이 영어실력 향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본부가 이런 효과를 위해 영어강의를 늘렸다면 일정 정도는 성공이다.

그러나 많은 구성원이 우려하는 것처럼 학생들의 지식습득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임시방편으로 교수들도 영어강의 이후 그날 중요한 내용은 한글로 요약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어실력향상이 대학교육의 목표라면 차라리 현 실용영어 과목을 선택교양이 아닌 지정교양으로 바꾸어 전공별로 매학기 학생 실력에 맞게 듣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영어강의가 영어실력과 전공실력을 모두 향상시킨다는 연구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소한 이에 대한 조사라도 먼저 진행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영어로 100% 수업을 진행한다는 국내 모대학 MBA과정이 얼마 전 조사에서 1위를 했다는 것을 근거로 삼을 것인가.

대학본부는 앞으로 큰 변화가 없는 한 영어강의를 매학기 증설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평가지표, 전공 관련 인증제 실시, 교육당국의 영어 강조, 온 국민의 영어 해바라기 등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방식이라면 영어와 전공지식 중 한 가지도 제대로 잡을 수 없다. 영어강의, 처음부터 새판을 짜보자. 물론 몇몇 사람에 의해서가 아닌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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