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로 매우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때가 있다. 숨을 쉬며 살고 밥을 먹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나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말을 건네고 인사를 하며 산다는 사실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각조차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왜 숨을 쉬는가?’, ‘왜 밥을 먹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숨을 쉬고 밥을 먹지는 않는다.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등의 말장난을 할 때를 제외하면 이 문제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토론을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듯하다.

대학의 존재 이유가 학문 연구와 교육 그리고 봉사에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거의 상투어가 되어 버리다시피 한 ‘진리 탐구’나 ‘봉사’라는 말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도 ‘왜 숨을 쉬는가?’를 묻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로 보일 때가 있다. 솔직히 수많은 대학생들에게 ‘왜 학문을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자연스럽게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나오는 시대는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왜 대학을 다니는가?’라고 묻는다면 ‘진리’라는 말과는 아주 거리가 먼 대답을 하는 경우도 많을 듯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문의 목적,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학을 다니는 목적이 진리 탐구에 있다는 점을 망각할 수는 없다.

오늘날 대학 교육의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이 빠져 있다는 데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 ‘참다운 이치’를 뜻하는 ‘진리’라는 말. 아주 쉬운 것처럼 생각되는 이 말이 함축하는 바는 매우 깊고도 넓다. 흔히 학문적 진리는 ‘어떤 현상으로부터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인 틀’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와 지식이라는 말을 동의어로 간주하게 된다. 이러한 지식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일반 이론을 적용하거나 개별 사실을 일반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그러한 과정은 고정불변의 공식이 아니므로 진리 탐구의 자세는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대학의 존재 가치가 지식 산출과 진리 탐구의 방법을 가르치는 데 있으며, 또한 산출된 지식을 인류와 사회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여하게 하는 데 있다는 사실은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망각하기 쉬운 당연한 논리들이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이나 칼 포퍼의 ‘수정 가능성’의 논리를 비롯하여 어떠한 학문론이든 지식으로서의 진리가 갖는 의미를 고려하지 않은 논술이 없다.

그런데 또 하나 잊기 쉬운 것들이 있다. 그것은 탐구 대상으로서의 ‘진리’일지라도 그것을 진리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거짓과 위선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참과 거짓은 대립되는 개념이자 모순을 이루기 때문이다. 성실하지 않은 사람은 학문을 할 수 없고, 솔직하지 않은 사람은 진리를 말하기 어렵다. 옛날의 학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학문’과 ‘자신에게 충실한 학문’을 구별하고자 했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라도 자신만은 속일 수 없다는 ‘무자기(毋自欺)’와 홀로 있을 때일수록 삼가야 한다는 ‘신독(愼獨)’의 이치는 비단 맹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이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진리의 토대를 이루기에 손색이 없다.

망각하기 쉬운 이러한 것들을 기억해 내는 일. 그것은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이다. 이를 기억해 내도록 하는 일이 교양이다. 교양은 교육받은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소양을 말한다. 지적 판단력과 미적 감수성, 윤리적 태도 등을 바르게 하여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열어가도록 하는 것이 교양이다. 오늘날 우리는 교양이 죽은 시대에 살고 있다. 거짓과 위선으로 학문을 말하며, 이해관계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지고 심지어는 부모와 스승의 가치까지 왜곡하는 경우도 발견한다.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표절, 짜깁기, 자기복제 등의 용어가 신문 기사를 채워가기 시작한 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이러한 시점에서 다시 학문을 말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망각하며 살아왔던 지극히 당연한 ‘교양을 살려야 한다.’는 명제를 슬로건으로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학문과 진리와 교양이라는 말은 하나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자아’와

‘정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