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연재 됩니다>

순수하게 영화가 좋았을 뿐이지 카메라 켤 줄도 모르던 내가 영화과 1기로 들어와 군대도 다녀오고 돈도 벌어보고 하다 보니 어느새 6번째 후배들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공대 부속 건물에 세 들어 살다가 어느덧 우리 건물을 갖고 2회 졸업생까지 배출하고 200명 채 안 되는 우리 과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른 과에서는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일이지만 영화과도 최초로 외국 학교와 교류를 맺고 공동영화를 제작하기로 했다. 무엇을 하든지 대부분 ‘우리 학과 최초’ 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이제는 별 다른 감흥이 없을 법도 하지만, 언어도 안 통하는 외국인과 난생 처음 가  보는 도시에서 그들의 장비를 가지고 영화를 찍는다는 일은 설렐 수밖에 없었다.

 기간은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다음 주인 6월 24일부터 일주일간. 장소는 습하고 덥기로 유명한 중국의 한 가운데 중경. 상해에서 떠난 임시정부가 잠시 머문 도시로 유명하고 양쯔강이 가로지르고 있으며 최근 스촨성 대지진이 일어난 지역과도 인접해 있다.

인구가 3000만 명이 넘는다는 이 도시의 중경대학교 영화과와 건국대학교 영화과 연출전공 6명, 연기전공 4명이 합작영화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교류가 확정되고 필요한 것은 물론 시나리오를 확정하는 것이었지만,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중경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당연히 감독인 나와 모든 스텝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영화의 모든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 수순이었지만 그들과 의견을 나눌 여건은 되지 않았다. 대신 이번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은 우리 과의 중국인 유학생 유희정과 중경대학교의 담당조교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사전 준비 작업이 시작됐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해온 일이지만, 이번 영화는 감독인 나 개인의지에 따라서 주제와 소재를 결정할 순 없었다. 그들과 내가 협력해서 만드는 영화이고 국제적인 교류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장점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이 점은 송낙원 주임교수님과도 의견이 같았고 그 지역의 경관이나 기온을 고려하고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도 한중 관계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재를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중국음식인 자장면으로 삼았고 그것이 한국인과 중국인간의 화해를 이끈다는 내용으로 골격을 잡아갔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사극의 요소를 넣어보기로 했고 중경대학교 측에 사극에 필요한 복장이나 무기 등을 요청했고 그들은 흔쾌히 승낙해 주었다.

 시험기간이 겹쳐 있고 한 학기동안 내가 만든 영화의 후반작업을 하느라 정신없는 중에도 중국에서 찍는 영화에 대한 욕심과 기대는 커만 갔다. 드디어 출발 하루 전, 우리는 학교에 모여서 최종적으로 여권과 서류 등을 검토하고 장비를 점검하고 외국 여행과 촬영 중에 있을 변수에 대해 대비했다. 드디어 당일, 주임교수님의 인솔로 건대 영화과 학생 10명은 인천공항에서 홍콩을 거쳐 중경공항에 이르는 비행을 시작했다. 중경대학교 학생들이 공항에서 우리를 배웅하기로 되어있었지만 홍콩에서 중경으로 가는 비행기가 두 시간이나 연착되었고 전화통화도 되지 않아서 중경에서 미아가 되어버리는 게 아닌지 고민해야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그들은 어설픈 한국어로 쓰인 ‘건국대학교 학생들 환영해요’ 라는 현수막을 들고 공항에서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비행기 연착으로 공항에서 꼬박 세 시간을 기다린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언어 장벽 등으로 걱정이 앞섰지만 영어를 잘 하는 중국인 학생과 한국 팀의 분위기 메이커 창욱이 덕분에 큰 소리로 인사를 나누고 포옹을 하는 등 다소 과장되었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첫 대면이 이루어졌다. 시간이 늦은 관계로 공식적인 행사는 하지 않고 우리는 호텔 급의 외국인 기숙사로 안내 받았다.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더위와 습기였다. 유럽이나 일본 등지를 다녀봤지만 이탈리아 남부지방에서도 느끼지 못한 이 특이한 더위는 습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분명했다. 온 몸을 감싸 오르는 뜨거운 물기가 입으로 스멀스멀 퍼지는 순간 숨이 막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지금은 6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저녁인데 말이다. 이 더위는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우리는 분주하게 준비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중국인 학생들을 만나러 학교로 향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여섯 분의 교수님과 20여명의 학생들이 열렬히 우리를 환호해 주었다. 중경대학 학과장님은 우리와의 작업을 위해 몇 달 전부터 학생들을 선발했고 몇 백 명의 학생 중에서 선발된 30명의 학생들을 소개해 주었다. 건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영화과가 연출전공/연기전공의 단순한 이분법으로 학생들을 선발해 점차 시나리오, 제작, 촬영, 음향 등으로 세분화 시키는 반면 이곳 학생들은 촬영부터 분장까지 다양한 세부전공을 처음부터 배정받고 있었다.

그래서 연출자로서는 우리와는 시스템 자체가 다른 그들의 전문화된 역량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 한국과 중국이 갈라져서 따로 영화를 제작하는 식의 경쟁이 아니라 두 팀으로 나누어, 팀을 대표하는 연출자만 국가가 다르고 다른 스텝들은 필요에 의해서 나누는 식으로 팀을 짰다. 우리 팀은 나와 촬영감독 상빈이, 촬영보조 창욱이, 주연배우 기태, 주환이만 한국인이고 건대 영화과 유학생인 프로듀서 유희정, 조연배우 정슈앙을 포함 다른 스텝은 모두 중국인으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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