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뽑고나서

신경림(시인)

읽을 만한 시가 많지 않았다. 요즈음 학생들이 거의 시를 읽지 않는다고 하는데, 역시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시란 덮어놓고 짧게만 써서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시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고 그러는 사이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 스스로 깨달아지면서 비로소 시에 눈을 뜨게되는 것인데 그런 과정이 눈에 띄는 시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점, 시인들의 잘못도 클터이다.

그런 가운데서 굳이 뽑으라면 우선 ‘빨래’를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사는 모습을 빨래로 비유한 대목이 얼마쯤 실감이 가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화려하고 현학적인 표현 대신 소박하고 진실한 언어를 동원하고 있는 점, 만족할 정도는 못 되더라도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낭만 고양이’, ‘어느 시인의 변명’은 재미있게 읽히는 시들이기는 하나 좀 혼란스럽다. 특히 ‘어느 시인의 변명’은 시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시로 형상화한 것으로, 시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이해와 접근이 있게 된다면 보다 좋은 시를 쓸 소지를 보여주는 시다. ‘내게로 오는 길’은 발상이나 표현이 다 어리지만 그래서 오히려 호감이 간다. 하지만 대학생의 시임을 전제하고 볼 때 너무 미숙하다. 이 세 학생의 작품 중 ‘빨래’를 당선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위의 얘기로서충분한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