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 총학생회는 학교가 개교한 1948년에 창설됐다. 학우들을 위해 일하며, 이익을 대변해주는 조직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 총학생회는 학우들의 어려운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대학본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성격이 강했다. 이승만, 박정희 등에 의한 독재시대였으므로 학내자치를 이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대학 총학생회에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기였다. 정부 대통령령에 의해 발족된 학도호국단이 학생자치단체를 대신하던 시절, 대학의 민주적 총학생회 설립 바람을 타고 우리대학도 직접선거에 의한 총학생회 부활에 나섰다.

결국 84년 11월 27일, 대학본부의 반대를 이겨내고 학우들의 직선제를 통해 69%에 달하는 투표율을 기록하며 총학생회가 구성됐다. 이는 우리대학 민주적, 자주적 총학생회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후 95년에 학생회 간부들을 공산당으로 몰아간 총학생회장이 탄핵되는 불미스러운 사고가 있었지만, 우리대학 총학생회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서 의장 다음으로 중요한 직책인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배출하는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96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총학생회가 등록금납부연기 운동을 진행해 등록금인하를 관철시키고 인하 분 1%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천 명에 가까운 학우들이 대학본부가 아닌 총학생회에 등록금을 납부하고, 총학생회는 동맹휴업을 주도하는 등 학우들의 참여가 총학생회의 노력과 어우러져 이뤄낸 쾌거였다.

2000년대에 들어 2004년과 2007년 총학생회 선거가 투표율 미달로 무산된 일이 있었으나 그 다음해 3월 선거에서 선출됨으로써, 총학생회가 건설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2010년 총학생회 선거가 연이은 사건사고와 투표율 미달로 무산됨에 따라, 우리대학 역사상 최초로 총학생회가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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