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대학평가를 보고

필자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모든 아들ㆍ딸들에게는 절대 이길 수 없는 필생의 적수(?)가 존재한다. 쫓아가려 하면 할수록 한걸음 더 앞서나가는 그들을 보며 결국 ‘뱁새가 황새 따라갈 수는 없는 거겠지’라는 속담으로 자위하며 패배를 시인한다. 패배감에 휩싸여 부인하고 싶지만 마냥 부러운 그 이름, 엄마친구아들이다.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 것도 심기 불편한 상황에서 그 높고 낮음을, 길고 짧음을 비교 당한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엄마친구아들에게 분노해마지 않는 진정한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서 2010년 아시아 대학평가를 발표했다. 당연히 발표 이후 <조선일보>는 결과에 대해 대서특필했고 세간은 평가 내용, 혹은 평가 자체를 가지고 설왕설래를 이어나갔다.

대학평가를 상세하게 분석한 기사와 오고 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어떤 기준으로 평가되었으며 모 대학은 몇 위를 기록하고 일정 부분에서 강세를 보였다고 비교한다. 일부는 아시아 대학평가 즈음에 <조선일보>의 대학광고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분석하면서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필자도 한 명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런 순위 매기기와 음모론에 눈길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평소 혐오해 마지않는 <조선일보> 기사들을 꼼꼼히 읽었다. 헌데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시아 대학평가에 관련된 모든 기사와 여론을 섭렵했지만 필자의 지식욕(?)은 아직도 배고팠다. 가장 궁금하면서도 중요한 내용인 마무리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앞서 말한 엄마친구아들과의 평가, 비교에서 필자가 분노한 진정한 이유는 어떤 부분에서도 대책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엄마친구아들은 지금 이 정도인데 넌 이만큼 뿐이니 부족해’라고 끝나는 단순한 키 재기에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조선일보> 아시아 대학평가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평가방법과 결과, 순위를 던져줌으로써 대학을 세간의 화젯거리로 만든다. 화젯거리가 된 대학은 곳곳에서 거론되며 좋고 나쁨 심지어 옳고 그름으로 나눠진다. 해당 대학, 혹은 그 사회에서 해야 할 노력에 대해서는 삼척동자도 알만한 수준의 조언에 그치고, 혹은 이마저도 전혀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필자는 순위를 매기는 경쟁을 싫어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순기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발전은 평가에 대한 적절한 분석과 조언이 이어질 때만 가능하다. 엄마친구아들과의 평가를 통해 발전하는 필자, 대학평가를 통해 발전하는 대학이 될 수 있도록 ‘현명한 비교’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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