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이 20대에 썼던 유명한 글 ‘항소이유서’에는 네크라소프가 썼던 이런 시구가 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는 자는 진정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이 문구를 보면서 가슴이 찌릿함을 느꼈다. 감동을 준 단어는 ‘슬픔’과 ‘노여움’이었다. 조국에 대한 사랑은 논외로 하고, 당시 26세의 젊은 운동권 학생이 가지고 있었던 세상에 대한 슬픔과 노여움을 과연 오늘날의 대학생은 가지고 있을까. 2010년을 살아가는 현재의 대학생들에게서 세상에 대한 슬픔과 노여움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우리는 단지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묵묵히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우석훈은 ‘88만원세대’에서 오늘날 20대들은 전 세대 사람들에 의해 세대 간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학습, 노동 등에 관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참된 지식과 도덕, 비판의식을 배우지 못하고, 오로지 ‘취업’을 위한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러나 스펙 향상을 위한 노력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도 취업은 언제나 불확실한 일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인간성의 상실, 우울증, 대학 생활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좌절을 느끼고 있다.

혹자는 우리를 ‘바보대학생’, ‘노예대학생’이라고 일컫는다. 과거에 비해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개개인은 자신이 추구하는 주체적인 대학 생활을 해야 하는데, 대기업이 원하는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대학생은 삼성의 노예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 결과 우리는 대학생 본연의 학문적 자세와 사회적 역할을 잃었다. 학과 선택 시에는 취직 잘 되는 과가 1순위이며, 인기 과목은 언제나 학점을 잘 주는 과목들이다. 사회 변화를 위한 활동보다는 당장 먹고 살기위한 노력을 하는 것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 사회가 고도로 자본주의화 되고 승자독식 풍조가 만연해지면서 대학생들은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노예로 전락하였다. 우리는 과거의 선배들이 많은 책을 읽고, 모여서 학습하고, 사회변화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

사실, 본인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쓰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한 위인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한 바를 글로써 풀어가고 있지만 정작 변화를 위해 아무런 실질적인 움직임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실망스럽다. 연대나 1인 시위와 같은 행위를 통하여 사회문제화하지도 않았고 그 외의 어떠한 용감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것도 행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글만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본인의 모습이 매우 안일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미천한 노력을 통해 학우 분들이 우리의 슬픈 현실을 인식하고 노여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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