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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는 역사기행 6년 역사역사기행의 의미와 선발과정 비화
김정현 기자 | 승인 2011.09.05 23:22

시작한 지 올해로 6년이 된 우리대학 총학생회의 해외역사기행사업(역사기행), 역사기행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역사기행 6년을 맞아 역사기행과 얽힌 주요 사건들을 되돌아봤다.

첫 역사기행의 의미 ‘우리대학에 대한 소속감 증진’
2004년 11월, 당시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좋은친구> 선거운동본부(선본)에서는 공약으로 중국역사기행을 내걸었다. 당시 정후보인 김정수(정치대ㆍ행정06졸) 동문은 <건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대학의 이름을 걸고 역사기행을 떠나 학우들에게 소속감을 높여 줄 것”이라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지금의 국토대장정이 그런 것처럼, 당시 이 공약은 예산문제로 많은 우려를 낳았다. 경선으로 치러진 선거 결과 복지공약에 집중한 <좋은친구> 선본이 당선되었고, 이후 7월 학생복지처의 많은 지원에 힘입어 중국 북경, 선양으로 떠나는 역사기행이 성사되었다.

2000년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우리대학 학우들의 대대적인 금강산, 중국 방문사업이 역사기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행사에 참여한 학생복지처의 주임 유준연(법과대ㆍ법02졸) 동문은 “당시 약 1,000명의 학우가 떠난 후 무사히 돌아와 금강산 관광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 역할을 했고, 2005년 역사기행으로 연결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허나 2000년 당시 총학생회가 사업을 추진한 데에는 ‘남북통일’ 등 남북교류를 위한 의미가 강했던 데 비해 <좋은친구> 총학생회는 ‘복지, 문화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둘을 연관 짓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당시 <건대신문> 편집국장 김지현(문과대ㆍ국문11졸) 동문은 “2005년 당시에는 중국에서 동북공정문제를 일으켰었는데 그 정세가 영향을 크게 미쳤을 것”이라며 “2000년 사업을 연관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 2006년에는 금강산, 2008년에는 일본에 방문하고 2010년 동북공정 당시 첫 회 방문했던 지역을 다시 방문할 때마다 역사기행의 의미는 계속 동북공정, 독도, 통일 등 정세에 맞게 바뀌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대학에 대한 소속감, 학우들 간의 친밀감 증진, 역사를 되새기는 의미에는 6번 모두 변함이 없다.

추첨제, 이전에는 선발제…2007년 벌어진 역사기행 선발논란으로
처음에는 역사기행에 참가하는 학우를 추첨으로 선발하지 않았다. 이 추첨제가 생기기까지 있던 우여곡절은 학내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2007년까지는 총학생회 내에서 선발을 해 참가했었다. 그러나 2007년 7월 단과대 학생회장 및 부회장 7명, 선거운동을 도왔던 06학번 6명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커뮤니티 사이트 KKULIFE.com에서 댓글공방이 벌어지는 등 비판여론이 일었다. 당시 학우들이 “학생자치기구로서 총학생회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반응을 보이는 등 총학생회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는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다음해에 당선된 <신 건대입구> 총학생회는 믿을 ‘신’을 내세워 당선되었고, 그 일환으로 2008년 역사기행부터는 공개추첨을 진행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과거 역사기행 관련기사(2005년 제 1회~2011년 제 6회)

김정현 기자  gsstrom@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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