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추계예술대학교(추계예대)에 다니는 한 대학생의 한숨 섞인 글이 올라왔다. 이 학생은 “순수예술대학을 취업률로 평가하다니”라며 “무턱대고 (학교와 우리를) 부실대학이라 욕하는 분들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추계예대는 올해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로부터 학자금 대출 지원 제한 대학 판정을 받았다. 추계예대는 음악학부, 미술학부, 문학부, 영상학부 4개의 순수 예술학부로 구성된 4년제 대학이다. 졸업생들이 전공을 살려 일을 한다 하더라도 프리랜서와 같은 작품 활동을 하므로, 4대 보험 수혜자로 산정하는 취업률 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대학가에는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교과부와 대학은 취업률, 등록금 인상률 그리고 신입생 충원율을 구조조정의 지표로 삼았다. 교과부에서는 ‘부실대학’을 없애기 위한 작업에 나섰고, 각 대학들은 대학 내에서 학과 구조를 통폐합하고 조정하고 있다. 최근 구성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폐과된 동아대 무용학과와 폐지 수순을 밟고있는 중앙대 가정교육과, 그 외 수많은 대학의 구조조정들이 이 같은 지표 아래 진행되고 있다.

취업률과 같은 구조조정 지표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확한 통계자료라서 평가에 쓰기 수월하다는 점도 있겠지만, 요새 사람들이 가장 원하고 걱정하고 관심 갖는 지표라서 그럴 것이다. 취업이 안 되고 등록금이 터무니없이 높은 사회에서, 사람들은 이 지표들에 관심을 갖기 쉽다. 우리대학의 한 교직원은 “시대가 원하는 대로 대학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는 건 마치 개혁적인 모습을 연상케 한다. 맞는 말이다. 허례허식, 비효율적 행정구조나 불공정한 예산운용 그리고 비리를 저지르는 학교법인과 같은 경우에는 응당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정작 현실을 보면 실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할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불똥이 튀고 있다.

취업률, 학과의 인기가 낮은 곳을 죽이는 것은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 ‘끌려 다니는 것’이다. 대학이 취업학원이 아니라는 것은 수도 없이 강조돼 왔다. 취업학원이 목적이 아닌 이상, 취업률이 낮다고 해당 학교를 저평가하는 건 목적이 전도된 것이다. 추계예대의 예가 바로 그렇다. 순수 예술가를 양성하는 대학이 취업률이 낮다고 부실대학이라는 낙인을 받은 건 누가 봐도 오류가 있다.

그렇다면 비인기 학과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학과라고 없애야 할까. 상대적으로 비인기 학과인 식물학을 연구하는 서울대 이은주(생명과학) 교수는 서울대 대학신문인 <대학신문>을 통해 “당장 관심이 적은 분야라도 융합으로 적용의 폭을 넓혀 사회에 기여하는 연구가 많다”며 “당장 비인기 학과, 비인기 전공이라도 쓸모없지는 않다”고 반박한다. 이는 교수로서 연구 경험이 있는 대학의 총장을 비롯한 보직교수들이 더 잘 알고 있을 사항이다.

세계 1, 2위를 다투는 해외의 명문대학들은 시대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대학이 띄는 독특한 학문의 가치를 굳건히 지킨다. 사회에 믿음과 신뢰를 심어주고, 결국 사회를 바꾸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처한 현 시대는 일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높은 순위에 오르고자 하는 유혹에 빠져 중요한 가치를 버리기 쉽다. 진정한 명문대학으로 발전하고자 한다면 지킬 것을 버리며 사회에 맞추기보다 대학에 맞는 가치를 다시 세우고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신뢰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정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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