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여성을 바라보는 어두운 사회적 시각을 들여다보다

“나랑 결혼하려면 담배 끊어라”

조윤주(20대.가명)씨는 오랫동안 사귀던 남자친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나랑 결혼하려면 담배 끊어라” 그 말에 눈물이 먼저 쏟아졌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가족만큼이나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담배, 담배가 없으면 괜히 불안하고 초초해진다. 담배 없이 살 수 있을까. 한바탕 울음바다를 만들고, 결국 금연을 결심했다. 근처 동사무소 금연클리닉을 찾았다. 금연클리닉의 도움을 받아 영양제도 먹어보고 패치도 붙여보았지만 다 헛수고였다.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다. 그래도 남자친구를 사랑했기에 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것은 남자친구의 잔소리와 스트레스. 결국 그녀는 담배에 다시 손을 댔다.

지난달 18일, 결혼정보회사 가연과 가연웨딩이 미혼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배우자의 흡연과 음주에 대한 주제로 설문조사를 했다. 남성 52%가 ‘흡연은 절대 안된다’고 답했고 그 중 41%가 ‘불건전해 보여서’를 이유로 꼽았다. 반면 여성들은 ‘내 앞에서 피우지 않으면 괜찮다’는 대답이 41%였다. 우리대학 익명의 남학우도 “내가 흡연하기 때문에 여성이 흡연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지만 내가 결혼할 사람은 담배를 피워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리대학 이재호(정치대ㆍ정외) 강사는 “일반 여성과 배우자가 될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 한 여성이 몰래 흡연을 하고 있다. ⓒ구글

이런 이유에서인지 많은 여성 흡연자들이 흡연 사실을 숨기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9년 국민건강통계의 여성흡연율은 7.1%, 남성의 흡연율은 46.9%이다. 그러나 서울 아산병원 조홍준 교수팀은 여성흡연자의 반 이상이 흡연사실을 숨긴다는 것을 국제학술지 『토바코 컨트롤(Tobacco Control)』에 발표했다. 조 교수팀은 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 통계치의 소변 내 코티닌(니코틴의 체내 대사물질) 성분의 분석을 통해 여성 흡연율이 13.9%임을 밝혔다. 당시의 자가 보고 흡연율인 5.9%의 2.4배에 달한다. 또한 흡연 사실을 숨기는 여성은 흡연을 숨기는 남성보다 6배나 더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대학가에서는 개방적인 흡연문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대학 한 학우는 “여성이지만 당당하게 흡연한다”며 “흡연은 성별과 별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당당하게 흡연하는 여성들도 늘어나는 추세지만 여전히 많은 흡연자들은 흡연하는 자신을 숨기려고 한다. 흡연 여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 설문조사에서 29.2%가 혼자 있을 때만 담배를 피운다고 응답했다. 20~30대 초반의 흡연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부모님이 흡연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는 25%에 그쳤다. 또래가 아닌 어른들의 시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서울 시민(60)은 “담배는 몸에 좋지 않고, 여자는 절대 피우면 안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여성들이 이렇게 숨어서 흡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여성들은 담배를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었고, 약으로도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담배 피는 사실을 숨기고, 숨어서 담배를 핀다. 이러한 현실의 원인은 사회적인 시선에서부터 나온다. 이재호 강사는 “남성 중심적, 수직적, 권위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타인 중심으로 사회화 되었다”며 “그 기반인 사회 제도는 엘리트들과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숙 여성학 강의교수 또한 “한국사회에서 흡연 여성은 임신, 태아와 관련하여 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여성흡연을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일러스트 구글
총여학생회 김지나(문과대ㆍ국문4) 회장은 “아기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여성이 금연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2세를 낳는 데는 남성들 역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여성 흡연자에 대해서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상우(한국외대ㆍ법4) 학생도 “여성이 흡연하는 것은 자신의 자유이고, 이상하게 본다면 사회적 시선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하는 개인 자신도 이유가 된다. 한국사회에 속한 각 개인은 타인을 심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재호 강사는 “자기중심적이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타자지향주의 때문에 한국 사회의 여성들은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라며 “스스로도 타인이 담배를 피우는 여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가족주의, 집단주의적 문화도 이유 중 하나다. 가족주의와 집단주의는 개개의 구성원보다 가족과 집단 전체의 가치를 중시하고 그런 관계를 확대하려는 사고방식이다. 이인숙 교수는 “여성흡연은 한국 문화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며 “한국사회 속의 개인은 가족과 집단에 속해 살아가면서 그 집단 내의 의식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타깝지만 한국사회에서 흡연여성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은 집단 내에서 보편적”이라고 말했다.

‘금연’도 막는 따가운 시선

여성들은 금연도 쉽지 않다. ‘금연’은 곧 ‘흡연자였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금연 선언과 흡연 선언을 동시에 하게 되는 꼴이다. 때문에 여성들은 금연도 몰래한다.

광진구 보건소 황애자 상담원은 “여성은 금연클리닉을 잘 찾지 않는 편이고 성공률도 낮다”며 “아이나 남편이 흡연 사실을 알지 못해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2011년) 광진구 금연클리닉을 찾은 1450명 중 여성은 10%를 조금 웃도는 181명에 불과했다. 이는 우리대학 금연클리닉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학기 금연 클리닉을 이용한 우리대학 학우 79명 중 여성은 단 2명뿐이었다.

김지나 회장은 “사회적으로 여성 흡연을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다보니 더 숨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이 문제를 음지가 아닌 양지로 끌어내야 금연 관련 이야기도 더욱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은영(가명) 씨는 흡연 사실을 알리고 금연에 성공한 사례 중 하나다. 흡연으로 인한 유방암 판정을 받은 은영씨는 가족들의 도움으로 금연 클리닉을 찾았다. 아이와 남편은 적극적으로 금연을 도왔다. 덕분에 하루 20개비 이상 담배를 피우던 그녀는 1년째 담배에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여대생들의 경우에는 주변 남학생들과 함께 금연 클리닉을 찾거나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2009년에 남자 친구가 직접 금연 멘토가 돼 금연을 돕는 ‘여성 금연 멘토프로그램’를 실시해 금연 성공률을 높이기도 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흡연율의 상승

여성 흡연은 사회발전을 통한 여성의 지위 향상과 관련이 깊다. 우리나라 여성 흡연율은 1980년대부터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2~30대에서 꾸준히 상승했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1,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여성의 지위가 상승되면서 흡연율은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남성만이 피울 수 있던 담배를 여성도 피울 수 있게 되면서 담배가 ‘남녀평등’이라는 변화된 시각을 대표하게 됐던 것이다. 담배는 한 때 “자유의 횃불”로 표현되기도 했다.

여성 흡연율과 사회적 지위의 상관관계는 캐나다 월털루대학 연구팀의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월털루대학 연구팀은 전세계 74개국을 상대로 참정권, 의회 진출, 수입 증가 실태와 흡연율을 비교 조사해 여성의 흡연율 상승이 사회적 지위 향상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밝혔다. 비교적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호주와 캐나다, 노르웨이, 스웨덴, 미국 등에선 남성과 여성의 흡연율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 반면 중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우간다 등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그다지 높지 않은 국가의 경우 남성의 흡연율이 여성에 비해 5배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개방이 우선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만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면서 흡연에 대한 인식도 함께 상승한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시각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바탕이 되고 있는 남성 중심적, 수직적, 권위적인 문화는 개인의 취향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우리나라 여성 흡연에 대한 시각 개선을 위해 더욱 중요한 것은 ‘개방적인 사회 형성’이다. 이인숙 교수는 “열린 시각을 가진 나라에서는 아무도 여성 흡연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개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사회 풍토를 먼저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흡연은 숨겨야 할 죄가 아니고 하나의 기호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화두인 ‘다양성’, ‘다원화’로 연결된다. 다양성보다는 ‘같음’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스스로를 사회의 틀 안에 가뒀다. 때문에 여성흡연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남성 중심적인 틀 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한 가지 숙제가 남아 있다. 이러한 틀을 벗어나 여성흡연을 양지로 끌어낼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음지를 더욱 양성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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