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지만 알려줄게"

우리대학 행정학과 11학번 “택배녀”님 제보
- 주 5일제, 2개월 근무
- 식대 지원 & 교내 기업실무 연수 지원금 월 40만원

면접장까지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그렇다. 방금 말한 문장엔 어떠한 비유, 은유를 포괄한 수사법이 없다고 장담한다. 면접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내가 두 달여 동안 일했던 모 특송회사의 인천공항 사무소는, 흔히 인천공항의 전부라 생각되는 여객터미널의 동쪽, 화물터미널 단지 내에 위치 해 있다. 공항 철도 지도를 펼치면 종착역인 ‘인천국제공항’역 바로 전 ‘공항화물청사’역이 바로 그 것이다. 이 ‘공항화물청사’역에 내려서도, 인천공항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15분쯤 더 들어가면 바로 나의 면접장이자 근무지, 애증의 공간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다. 긴 여정을 거쳐 도달한 2만 제곱 미터 부지의 모 특송회사의 인천 공항 사무소, 그 곳에서 이루어진 인턴 면접은 외국계 회사답게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장차 나의 직속 상사가 되실 부장님이 자기소개서를 기반으로 외국어 능력과 OA 사용 능력, 그리고 업무와 관련된 법 과목 수강 경험에 대해서 물으셨다. 스스로의 면접 스킬(?)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지만, 결국 수일 뒤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었고, 서울-인천공항이라는 두 달간의 통근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색했던 관등성명과 다나까 체
첫 출근을 한 날의 떨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건물 한 층을 하나의 사무실로 쓰는 탓에, 긴~ 복도를 지나는 동안 수 십 번 안녕하십니까! 외쳤고, 내게 좀 더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에겐 관등성명을 해야 했다. 어렵게 부여 받은 나의 자리는 사무실의 맨 안쪽, 부장님들 방을 바로 등진 상석 중에 상석! 풀어 설명하자면, 본의 아니게 유리문을 통해 부장님의 동태를 틈틈이 감시하는 동시에, 부장님 이하 사원들로 하여금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말을 함부로 걸기 힘들게 하는 그러한 자리였던 것이다. 마땅한 사수 없이, 동기 없이 섬처럼 뚝 떨어져 시작해야 했던 인턴의 첫 주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이제껏 어느 누구 못지 않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고 스스로 자신했고, 또 역할을 맡게 될 때도 잘! 한다, 똑! 부러진다 소리를 예사로 들어왔던 나였다. 그렇기에 인턴으로서의 서툰 내 모습은 더더욱 마주하기 어려웠다. 부장님께 아침 인사 겸 업무 스케줄 확인을 할 때면, 어색한 ‘다나까 체’를 자연스레 구사하는 것 조차 결코 당연하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생의 장그래가 생각나는 고전적인 대목이지만 복사를 하고 팩스를 보내는 것 역시, 평소 같으면 전혀 당황할 일이 아닐 일에도 우왕좌왕하게 된다. 아무래도 사수라 할 만한 사람이 부장님 이외 전무했다는 점, 특송회사 업무 특성 상 전 직원이  쉴 틈 없이 바빠 뭣 하나 물어볼 틈이 없다는 점때문에 그런 상황이 더 곤혹스럽지 않았나 싶다. 내가 근무한 ‘통관지원팀’은 특송회사 운영에 필수불가결한 세관과의 협조 사항 및 법규 등을 담당한다. 본래는 부장님 1인 부서 형태로 운영이 되기 때문에, 나는 내 주요 임무가 되었던 AEO(성실무역업체)인증 업무를 차치하고서도, 부장님 보좌, 수행 및 의전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업무가 익어갈수록 늘어가는 것은 철면피뿐! 어색하기만 했던 ‘다나까 체’, 복사와 팩스 등 사무 잡일은 눈감고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나보다 스무 살쯤 더 나이가 드신 상사에게 업무 요청사항을 닥달하는 것도 넉살 좋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난감했던 ‘내’ 자리가 어느새 ‘통과의례’로
잠시 전, 인턴 생활 시작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상석이었던 내 자리의 난감함을 언급했었다. 인턴 기간을 거치면서 본인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한 가지를 꼽자면, 부장님과 사원들 모두에 부담이었던 내 자리가, 상쾌한 업무의 시작을 여는 자리, 보고하러 가기 전 긴장을 푸는 자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장님들은 내가 온 뒤로 사무실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사탕 같은 얘기를 곧잘 하셨고, 사원들은 부장님께 보고하러 가기 전, 통과의례처럼 내 자리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고 가셨다.

“한계를 정하지 말고 일단 해보라” 새로운 나를 발견하다
인턴 업무를 마무리하던 마지막 주는 유독 자주 울적해지곤 했다. 이렇게 업무에 자신이 붙고, 직원들과 정이 들만할 즘 떠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즈음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일하던 바로 옆 부서에 신입 모집 공고가 올라왔다. 우리 부장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쉽게 서류를 통과했으나, 면접은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 자리는 관세사 자격증이 있다는 다른 지원자에게 돌아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역시 몸바쳐 일했더니 간보고 버리는 기업의 횡포’ 였냐고? 물론 아니다. 겨울 방학을 맞아 각종 대외활동과 인턴 지원을 앞두고 있을 학우들에게 ‘한계를 정하지 말고, 일단 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물류산업에 큰 관심을 두지 않던 나였지만, 인턴 이후 ‘물류관리사’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고, 해당분야에 큰 관심과 포부를 갖고 도전 중이다. 아직 ‘미생’도 되지 못한 취준생이지만, 달리 보면 아직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는 유일한 순간임을 나도, 당신도 기억하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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