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일(경영대 경영2)

“깊은 대양을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가 되시길 바랍니다.”

계획에 맞추어 알찬 수업을 해오시던 교수님은 평소와 달리 수업시간의 대부분을 이 이야기를 하는 데에 쓰셨다. 아무리 애를 써도 졸음이 쏟아지는 오후 한 시 무렵, 모두의 눈은 말똥말똥 교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생들을 살뜰히 챙기시는 교수님이라,그의 바람 속 진심은 더욱 와닿았을 것이다. 간단히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 작은 연못의 송사리부터, 큰 바다 속 커다란 고래까지-놀란 표정으로 고래를 물고기로 보긴 힘들다고 강조하셨고, 적지 않은 학생이 그의 농담에 미소를 머금었다. 각자 물 속에서 헤엄을 치며 살아가지만, 송사리의 헤엄과, 고래의 헤엄은 엄연히 다르다. 송사리는 자기 나름에는 죽어라 헤엄을 치더라도, 불과 바로 앞에 힘겹게 도착할 뿐이다. 이와 달리 고래는 단순한 헤엄이 아닌, 상상만 해도 여유가 넘치는 근사한 유영을 하며 바다를 노닌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한 번 사는 인생, 큰 물에서, 여유롭고 근사하게 살기를 바란다.

별다른 걱정 없이 유유자적 살며, 배고플때는 입을 벌리는 정도의 노력만 해도 되는, 지구 최고의 크기를 자랑하는 동물 고래. 그런 고래가 되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말이다. 내가 진정 고래가 되고 싶고,될 수 있다면 말이다. 당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그 진심은, 나 역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이야기를 듣는 내내 내 머리 속에는 자꾸만 송사리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민물고기인 송사리는 주로 수심이 얕은 곳에 살며, 물살이 급한 곳에서는 살 수 없다. 크기는 약 5cm에 불과하다. 이런 송사리가 고래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송사리의 머리 속을 들어가 보지는 못 했지만, 고래의 삶을꿈조차 꾸지 못 하리라 확신한다. 태어날 때부터 송사리로 태어난 송사리는 어떠한 노력을 해도 고래가 될 수 없다. 애초에 짜디짠 바닷물의 냄새조차 맡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삶이 고래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의 헤엄을 하찮게 여기며 가여워 할 수 있을까? 송사리는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 환경 변화에 대한 내성이 강한 편이다. 플랑크톤을 주식으로 하지만 잡식성이고, 산란기는 4월 하순에서 10월 사이로 연 2~3회 산란한다. 송사리의 생태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송사리가 고래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송사리에게는 송사리만의 삶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것만의 가치가 있다. 굳이 고래가 될 필요가 없다.

송사리는 송사리대로의 삶을, 고래는 고래대로의 삶을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 또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 송사리의 삶을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러겠노라 말하기 힘들 것 같다. 그렇기에 슬프고 씁쓸하다. 교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듣던, 서로 다른 물 속에서-그렇지만 또, 같은 건국대학교의 물 속에서- 숨쉬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같이 넓은 바다에서 유영하는 고래만을 꿈꾸며, 오늘도 오직 이를 향해 달려가기에.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