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복잡한 한국사회의 호칭 이야기

지난 5월 가수 설리가 SNS에서 선배 배우 이성민에게 ‘씨’라는 호칭을 붙여 논란이 됐다. 네티즌들은 설리보다 나이가 많고 연예계 대선배인 이성민에게 높은 사람에게 사용하지 않는 ‘씨’와 같은 호칭을 붙이는 것은 예의 없는 행동이라며 지적했다. 설리는 서로를 아끼는 동료로서 합의한 호칭이라고 설명했지만, 설리의 호칭에 대한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일러스트 박제정 기자

한국 사회는 호칭을 중시한다. △언니 △김과장님 △제수씨 △처제 등 한 사람을 두고도 문화적·사회적 상황과 역할에 따라 각기 다른 호칭을 사용한다. 생각지 못한 호칭에 당황했던 경험이나 상대방에게 어떤 호칭을 사용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상황은 누구나 겪어 봄 직한 상황일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호칭 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일면서 여러 방면에서의 호칭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연 호칭어가 보여주고 있는 한국사회의 모습은 무엇일까.

 

<국민생각함> 설문조사 “비대칭적인 가족호칭, 개선해야 한다”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오랜만에 보는 먼 친척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가족호칭을 검색해보는 것처럼 가족호칭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또한 가족 내 호칭은 그 사용이 비대칭적이고 성 불평등하다는 이유로 비판받고 있다.

‘국민생각함’을 통해 진행된 가족호칭 인식조사 결과/여성가족부 조사를 근거로 재구성

가족호칭의 비대칭성은 호칭의 남녀차이에 대한 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국민권익위원회 온라인 참여 플랫폼인 ‘국민생각함’을 통해 가족호칭에 대한인식을 조사한 결과, ‘남편의 동생은 도련님 혹은 아가씨라고 높여 부르는 반면 아내의 동생은 처남 혹은 처제로 낮춰 부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38,564명)의 98%가 ‘문제가 있다’라고 답했다. 또한 52.3%의 응답자가 개선해야 한다면 ‘이름+씨’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특이한 점은 20대와 30대 여성의 참여율이 매우 높은 조사였다는 점이다. 여성이 상대적으로 가족 내 호칭의 불평등함에 민감하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족 내 호칭에서 차별을 느끼는 대상은 주로 여성이다. 이 외에도 배우자의 가족을 부르는 데에 있어서 여성은 ‘시댁’, 남성은 ‘처가’처럼 여성만 높임 표현을 사용하거나, 어머니의 부모님을 표현할 때 ‘외’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가족 내 호칭은 남성 중심적인 호칭을 보여주는 동시에 가족 내의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대학 국어국문학과 오재혁 교수는 “여성은 혼인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불평등한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며 “사회나 직장에서 느끼는 관계와 달리 가족관계문화는 훨씬 더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꾸는 것이 더 힘들다”고 전했다.

 

호칭에서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서열

“처음 ‘씨’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 상대방에게 더욱 존중받고 우대받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진짜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A씨(20)는 처음으로 ‘씨’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를 회상했다. A씨가 단지 ‘씨’라는 호칭을 들었다는 이유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 이유는 호칭이 단순히 상대를 부르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칭은 알게 모르게 나이로 형성된 서열관계가 그대로 드러나고 이런 호칭은 전통이나 예절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중시된다. B씨(50)는 “첫 만남에서 얻은 상대방의 나이에 따라 서열 정리가 이뤄지고 그 서열에 따라 호칭이 정해진다”라며 서열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호칭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시라고 전했다.

오재혁교수는 “한국사회는 예로부터 이름을 부모님이 지어주신 소중한 것이라 여기고,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사회였다”고 호칭어 발달에 대해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부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정보가 나이, 현대사회에서는 직업이나 직급이 됐다”며 “높임말과 함께 호칭어가 서열관계를 드러내며 한국사회의 서열관계를 더 공고히 하는데 일조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호칭어는 관계를 드러내기 때문에 나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직업 △직급 △사회적 지위에서의 서열관계에서 기대되는 호칭으로 대우받지 못했을 때 우리는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필요한 건 법이 아닌 인식의 개선

고부갈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의 주인공 ‘진영’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시동생 ‘호원’에게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평소처럼 이름을 불렀다.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 어른들은 모두 놀라 아니꼬운 시선을 보냈고 이는 다큐멘터리 초반 시어머니의 불만 사항 중 하나로 등장한다. 이는 성 불평등한 가족호칭에 대한 민감도와 개선의지가 약한 50대 이상 기성세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또한 지난 5월, 여성가족부가 제 3차 건강가정 기본계획(2016~2020)의 2019년 시행계획에 가족호칭 개선 권고안을 포함하자 정부까지 나서서 호칭에 관여해야 하냐며 반대여론이 일며 호칭문화 개선에 대한 대비되는 인식이 드러나기도 했다.

기업들은 직급과 서열 중심의 호칭을 탈피하고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 운영을 위해 직급 위주의 호칭에서 이름 뒤에 ‘님’을 붙이거나 영어로 된 별칭을 사용하는 일명 ‘호칭파괴 제도’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아있다. 구인 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962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직급·호칭 파괴제도’에 대해 조사한 결과, ‘호칭파괴제도’를 도입했다가 다시 이전의 ‘직급·호칭제도’로 회귀한 기업은 88.3%이다. ‘직급·호칭 파괴제도’가 수직적인 기업 분위기를 허물어주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단계적인 인식개선을 포함한 장기적인 노력 없이는 그 효과를 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출처 대한뉴스

한국사회에서 호칭의 사용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 잘못됨을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호칭 문화를 개선하는 것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재혁 교수는 “언어의 힘은 민중에게 있다”며 “호칭어 사용에 불편함과 부당함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 하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정해지는 것이 아닌 온전한 ‘나’로서 그것이 드러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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