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아시스

■예술인, 공간을 갈망하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공간 속에서 안정을 느끼며, 또한 그 공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며 살아간다. 즉 사람에게는 공간이 필요하며, 본능적으로 그 공간을 갈망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살아가는 공간인 집이 필요하듯이 학생에게는 배움의 공간, 학교가 필요하고. 예술가에게는 예술을 할 수 있는 공간, 즉 작업실이 필요하다. 이런 작업실을 ‘아틀리에’라고 부른다. 보잘 것 없는 작은 공간일지라도 그들의 창작활동이 가능하다면 그 하나만으로 아틀리에는 경이로운 문화공간으로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예술가 중 대다수가 비싼 임대료 앞에 한숨을 내쉬며 정착할 곳이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들 앞에는 5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고 방치된 건물이 떡 하니 서있다. 짓다가 만 음산한 건물. 그래도 좋단다. 알아서 내부를 마무리하고,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곳으로 거듭나게 하고, 이 건물로 인해 덩달아 죽어있던 주변 공간에까지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단다. ‘예술인회관’. 어차피 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이지 않았던가! 자신의 작업공간을 숨죽여 기다리던 젊은 예술가들에게 한줄기 빛이 내리는 찰나다. 문제있나?

▲ © 오아시스

 

■유쾌한 점거를 꿈꾸는 ‘오아시스’

이 예술가들이 뭉쳐, 버려진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단체인 ‘오아시스’를 만들고 예술인회관을 무단점거하려는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꾸렸다. 예술가의 창작공간을 위해 유쾌한 점거를 꿈꾸는 ‘오아시스’를 홍대 앞에 위치한 그들의 아지트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오아시스 프로젝트에 관한 자료들이 벽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그곳에선 7명의 오아시스 참가자들이 열띤 회의 중이었다. “17일에 있을 퍼포먼스에 대한 회의 중이예요”라는 김윤환(40)씨. 그는 이 프로젝트의 대표이다.

“가짜 사과를 커다랗게 만드는 건 어때?” “차라리 진짜 사과가 더 싸고 낫겠네.” “그럼 커다란 풍선으로 사과를 만드는 거야!” 예총 쪽에서 오아시스의 예술인회관 무단 분양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 옴에 따라 이번 퍼포먼스 때 그들에게 줄 사과에 관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오아시스의 임무는 빈 건물을 예술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 파리에서 스콰트로 5년 점거에 성공한 작업실의 멤버였던 김현숙(35)씨는 “한국에서는 이런 스콰트의 움직임이 실험적인 단계”라며 “예술가들에게는 권위적이지 않고, 느낌을 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며 스콰트가 바로 그것을 위한 아이디어 창고”라고 말한다.

 

■공간의 창조적 재생산, 스콰트

이러한 오아시스의 움직임과 같은 ‘빈 공간 점거’는 오래전부터 외국에서 존재해왔고 ‘스콰트 squat’라 불리고 있다. 스콰트라는 단어는 1835년 오스트리아의 목동들이 자신의 초지가 아닌 곳에 양을 데려가서 먹이던 행위에서 비롯됐으며, 이후 가난한 사람들이 집세를 내지 못해 빈집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요즘엔 도심에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공간을 예술적으로 재활용하는 행동에 이르렀다.

암스테르담에는 스콰트로 합법화된 공간이 300여개가 넘으며, 공장이나 노후 산업시설과 같은 대규모 공간의 점거를 통해 카페나 라이브하우스, 공동체 생활과 연계된 커뮤니티센터, 문화시설 등이 조성되었다. 현재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국가에서도 상당수의 ‘점거 아틀리에’가 존재하며 서로의 작품을 교환해서 전시를 하고 있다.

■목표는 예술인회관

현재 오아시스의 목표인 목동 예술인회관은 시공회사가 부도나고 임대시장도 얼어붙으면서 5년째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되고 있는 건물이다. 이에 오아시스는 ‘목동 예술인회관 입주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시민, 예술가를 위한 개방적인 공공문화공간으로 재구성할 계획을 세웠다. 건물 소유주가 아님에도 ‘분양’이라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세워 1차 분양을 마감한 결과 340여명이 모여드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다. 특히 작업공간이 부족한 미대생들도 신청을 많이 했다고 한다.

“신청만 하면 공짜로 작업공간을 준다니까 그냥 신청하러 오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절실하게 작업공간이 필요한 분들, 작업실을 얻지 못하더라도 취지에 공감해서 신청하신 분들도 계세요”,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격려도 해주고 있어 힘이 나요”라고 김현숙씨가 미소지으며 말한다.

이 프로젝트 신청자 중의 한사람인 우리대학 졸업생 노순택(정외·98졸)씨는 “지금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작업실이 절실히 요구된다”며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예술인회관의 공간을 나누어 기본적인 잠재력을 갖춰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 © 오아시스

■가장 큰 난관 ‘불법’

그러나 오아시스 프로젝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불법이라는 점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스콰트는 무단점거이기 때문에 불법이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오아시스 참가자들은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참가하며 추진하고 있다. 이에 오아시스는 “우리의 목적은 빈 공간을 작업실로 활용하자는 취지이지 결코 법을 어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김현숙씨는 “예총 소유이지만 나라의 돈으로 지어진 건물이고, 예술인인 당사자들은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스콰트에 대해 풍물동아리 ‘한백’에서 활동 중인 김경준(정치대·부동산2)군은 “허락을 받지 않고 건물을 무단으로 쓰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지만, 나도 학교 안에서 풍물을 하며 공간부족을 절감했고, 공간에 대한 절실함은 충분히 이해한다”며 “나에게도 이런 빈 공간이 생긴다면 스콰트와 같이 다른 사람소유의 빈 공간에서 풍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담보로 내밀 수 있는건 가능성

김현숙씨는 스콰트를 “예술가의 실험적인 시도”라며 “이렇게 모였다는 것 자체로 숨어있는 갈증을 표출하고 문화적 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든다”며 기대감을 드러낸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이 담보로 내밀 수 있는 것은 ‘넘쳐나는 아이디어’와 ‘창작에 대한 욕구’,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한 가능성이다. 그 담보로 얻어지는 작업실 하나가 그들에게는 소통의 통로가 되고, 이 프로젝트는 바로 소통의 사회학이 되는 것이다. 작업실 없이 힘들어하는 예술인들 앞에 나타난 한줄기 빛이 ‘반짝’이 아닌 광활한 빛을 내뿜는 ‘태양’이 되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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