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것을 알고도 그냥 지나치는 ‘매정함’은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 영화 「사마리아」의 여진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한병태. 이 두 사람이 만나면 ‘방조죄’를 지은 자의 아픔이 쏟아져나온다. - 편집자 풀이 -

여진은 아버지가 수감된 후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재수학원에 등록한다. 재수학원에는 한병태라는 영어선생님이 있었으니, 학창시절 급장 엄석대의 그늘 아래 굴절된 내면을 갖게 된 영혼이었다. 경기도의 한 대학에 합격한 여진은 학원 선생님들과의 기념술자리에서 처음으로 한병태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언젠가 어렴풋이 느꼈던 동질감. 이것은 같은 죄를 저지른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여진: 한 선생님, 선생님은 왠지 저와 같은 아픔이 있을 것 같아요.

병태: 그럴지도 모르지. 나도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 그냥 느낌이랄까.

여진: ‘후회’ 란 거 해본 적 있어요?

병태: 후회라……

여진: 한 친구가 있었어요. 죽는 순간까지도 웃고 있던 친구. 자신이 정말 원하는지 확인도 해보지 않은 채 그저 쾌락에만 이끌리던 친구. 전 친구가 몸을 팔아 번 돈으로 같이 즐기기만 했던 거예요.

병태: 넌 그 친구가 잘못하고 있단 걸 몰랐니?

여진: 알고 있었어요. 그땐 잘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 친구가 죽은 다음에야 깨달았어요. 난 그 친구의 잘못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거예요. 알고 있었지만 그냥 버려뒀던 거죠. 그리고 결국 그 친구가 죽음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뒀던 거예요. 제가 친구를 죽게 만든 거예요! 흑흑

병태: 글쎄…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를 옳은 길로 이끌 수 있었을까? 난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 내 어릴 적 생각이 나네. 엄석대…… 그 친구 역시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지. 주먹으로 우리들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 난 처음엔 이런 친구가 싫어서 싸우려했지. 그렇지만 결국 난 그 친구에게 끝없이 복종하게 됐어. 어느 순간 그에게 복종하는 걸 더 편안해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

여진: 결국 그 친구는 어떻게 됐죠?

병태: 글쎄. 어딘가에서 나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겠지.

여진: 선생님도 나처럼 친구가 잘못된 길을 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네요. 지금도.

병태: 그렇지. 하지만 난 사회에 나온 뒤 수많은 엄석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 그리고 엄석대는 절대로 바뀔 수 없단 것도 알았지. 나 혼자서 그 수많은 엄석대를 바꾸려다간 나만 다칠 뿐이야.

여진: 그럼 선생님은 어렸을 때 지었던 죄를 계속 되풀이할 건가요? 앞으로도 계속?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

병태: ……

여진: 선생님도 저처럼 죄를 씻기 위해 노력해 보세요. 아마 선생님 자신도 그것을 원하고 있을 거예요. 이 사회의 수많은 엄석대. 너무 불쌍하지 않아요? 잘못하는 건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 그것을 알면서 그대로 방치하고 있을 건가요?

병태: 내가 할 수 있을까? 여진: 선생님. 어쩌면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 엄석대 같은 사람들 보다 더 많을 지도 몰라요. 그럼 선생님은 엄석대 보다도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선생님, 더 이상 죄를 짓지 마세요. 선생님은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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