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제국주의가 미국 사회에서 추구하는 문화적 흐름을 세계로 확대하고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세계를 ‘선악’ 두 가지로 나눠 선제공격을 운운하는 부시가 재선된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미국사회가 그만큼 흑백논리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며 다양성과 다원주의와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사회에서 운운하는 흑백논리가 우리 대학생의 일상에도 쉽게 적용된다는 것이 우려를 낳게 한다. 아래 기사에서 흑백논리의 대가 ‘봉’기자의 이상형도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다. ‘공무원 파업을 지지하는 사람=좌파’, ‘록 음악=고급 음악’, ‘전쟁반대=반미주의자=친북주의자=비현실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은 정계나 언론뿐 아니라 우리 학생들도 흔히 사용하는 흑백논리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공무원 파업을 지지하는 우파’와 ‘댄스음악을 비롯한 대중문화의 고급성’, ‘전쟁을 반대하는 친미주의자’, ‘북한정권을 비판하는 반미주의자’ 그리고 ‘현실적인 반미 또는 친북주의자’의 존재를 모두 사멸시켜 버린다. 이런 점에서 흑백논리는 어떤 사안에 적용되든 패해를 낳기 마련이다. 무슨 일이든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지고 대안을 찾을 때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흑백논리는 소위 ‘흑’으로 분류되는 영역의 많은 희생을 가져온다. 당장 많은 사람들이 비판한 이라크 전쟁에서도 이라크를 ‘악’이라 가리키는 미국 사회의 손가락질에 무고한 시민들이 수없이 죽어나갔다. 물론 우리생활 주변에서 ‘흑’이라는 이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우리대학 1만2천 학생들이 모두 이성애자일 수는 없는 만큼 수많은 동성애자가 숨죽이고 있고, ‘운동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선배들은 후배들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자주 의식하곤 한다. 이들은 타인에 의해 ‘흑’이라는 영역에 내몰리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 놓고 데이트를 즐기지 못하며 후배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수도 없다.

이처럼 흑백논리는 다양한 접근을 배제하고, 많은 피해를 야기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흑백논리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들이 가볍게 가리키는 손가락이 다양한 무지개를 ‘흑과 백’으로 가르는 것은 아닌지, 또는 그 ‘흑’의 영역에서 어떤 이들이 말 못할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게 되짚어 보는 신중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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