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공무원들이 말하는 그들의 삶

지난 3일 철도노조에서는 파업을 전면 철회했다. 노사합의에 의해 인원 충원 요구가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객들 중 이들이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본지는 한 철도역을 방문해 열악한 철도 공무원들의 근무환경을 알아보았다. - 편집자 풀이 -  

▲ © 김봉현 기자

■봉급만 국가에서 나오면 공무원?

일요일 늦은 8시. ㅅ역 개표소에서는 잦은 실랑이가 생긴다. 얼굴 표정이 모자창에 가려 더 어두워 보이는 곽노균(55·역무원)씨. 그는 25년 동안 개표소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의 불만을 짜증 없이 받아들인다. “교통카드를 찍었는데 나갈 수가 없다”며 옷깃을 잡아당기는 할머니를 웃으면서 통과시켜 주기도 하고, 앞에 사람들의 줄이 밀리더라도 대화가 힘든 외국인 노동자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이렇게 그가 하루에 상대하는 사람은 평균 7~8만명. 그러나 그가 쉴 시간은 거의 없다. 곽씨는 “대부분의 사업장이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곳은 아직도 24시간 맞교대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대부분의 철도청 소속 공무원들은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9시에 다른 근무자와 교대를 한다.

사람들이 한 번 개표소를 빠져나가자 조금 여유가 생긴 곽씨는 “이 직업은 국가로부터는 사람 취급을 못 받고 승객들에게는 욕먹으면서 쉴 시간은 없다”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봉급만 국가에서 나오니까 공무원”이라는 그는 오늘도 새벽 1시가 넘어야 잠깐 눈을 붙이고 4시부터 아침 운행을 준비해야 한다.

철도청이 구조조정을 이유로 더 이상 인력충원을 하지 않으려는 결과가 철도 공무원들에게는 고된 노동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는 다시 개표소로 손님들이 몰려오자 “올해 노사합의로 7월 1일부터 3교대를 해준다고 들었는데 언제 시행될지 모를 일”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 © 김봉현 기자

■근로기준법이 무색한 근무시간

같은 역 2층. 바퀴달린 여행가방을 뒤로 세워 졸고 있는 직장인, 보따리 위에 앉아 쉬는 허리 굽은 할머니와 그 옆에서 두 손을 꼭 잡은 연인들까지. 열차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계속 전광판만 바라보는 가운데 “장항가는 열차 지연되고 있습니다, 무궁화, 장항가는 열차 지연되고 있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모두들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런 안내방송을 하고 마이크를 끄는 김영록(54.역무원)씨의 기분도 착잡하다. 누군가가 와서 항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방송하고 나면 손님들이 와서 짜증내고 심지어 술에 취해 폭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는 김씨. 그래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다음 날까지 근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적은 인력으로 많은 승객을 상대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그는 “철도일은 중노동과 별 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방송실에서 잠시 쉬고 있던 2년차 장연수(23·역무원)씨는 “일하는 시간이 근로기준법에도 저촉되지만 공무원이라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철도 파업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철도가 멈추면 당장 불편을 겪어 저희를 욕하지만 휴가철에도 휴가 한번 못 내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요구하는 것 뿐”이라고 애기한다.

■그래도 희망은 3조 2교대

30분 쉬고 다시 3시간 일하러 나가는 중이던 김경선(26·매표원)양. 그녀도 역내 다른 근무자와 같은 맞교대 근무자였다. “남들은 하루 일하고 하루 쉰다고 하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서운해 하는 그녀는 “이틀을 하루같이 지내다 보면 피곤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줄 여유가 없다”고 한다.

힘든 맞교대 때문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웃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래서 얼마 전 모니터링에서는 낙제 점수를 받아 서울에서 재교육을 받고 왔다. 흔히 다른 직장에서 보장되는 생리휴가는 있어도 쓸 분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매표소에서 근무하는 인원이 10명도 되지 않아 누구 한명이 쉬면 나머지 사람들이 힘들어 질 것을 모두들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희들이 파업하면 철밥통이라는 소리만 하지 한번이라도 우리 입장을 생각해보지 않는다”는 그녀의 희망은 앞으로 3조 2교대가 시범운영만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인원 감축이 될까 우려 된다”는 말은 잊지 않았다.

▲불 꺼진 역장실 © 김봉현 기자

밤 10시. 전광판의 지연시간이 갑자기 늘어나자 열차를 기다리다 지쳐 자리에 주저앉는 승객들. “철도공무원도 노동자와 다르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다시 일하러 들어가는 김양. 그들의 표정은 같은 시간 역장실 창문에 비친 어둠처럼 컴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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