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인간

인간의 활동을 한마디로 뭉뚱그려서 '삶'이라고 표현하지만, 삶이란 결국 생존하기 위한 활동이며 이는 '나와 세계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화란 본질적으로 나와 세계가 물질을 주고받는 것이다. 인간은 그 대화에 앞서 대화를 설계한다. 그 생존을 위한 삶의 설계야말로 인간의 특징이고 그 설계를 주도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에 대해서 그리고 그 철학의 주인인 인간에 대해서 이런저런 장식을 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역사가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굴복시키는 투쟁과 정복의 역사임을 그리고 그 승리의 역사였음을 떠올려보면 그런 치장이 한낱 인간의 기만임을 어찌 모르랴.

그 기만의 토대 위에 축조한 제법 그럴듯한 인간의 의미와 철학, 그래서인가 허울 좋은 그 의미는 그저 천상을 떠돌거나 권력의 힘에 빌붙거나 말꾼의 장난에 놀아날 뿐 정작 인간세상에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단지 시류와 어우러지는 것이 고작이다. 

수 년 전, 완벽한 '인간의 유전자지도'가 읽혀졌다고 해서 떠들썩한 적이 있지만, 그간 종교의 경전이나 인문사회과학 또는 과학에 의존하던 인간해석이 점차 그 자리를 자연과학으로 이동하여 왔거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인간해명의 제대로 된 좌표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양대 이념의 종료와 함께 찾아온 세기의 교체와 더불어 급히 지구촌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동체적 가치는 물론 공동체를 형성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규명과 해석과 인식이 서구의 근대라는 시점에 머물어 꼼짝도 않고 있음은 실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염려스러운 것은 문명을 지도하고 유도하기는커녕 따라잡지 조차 못하는 인간의 성찰적 지성 즉 철학의 무능은 이제 우리에게 엄청난 문명의 재난과 함께 인류사회적 대재앙을 예고하고 있음이 여러 징후로 포착되는 불안스러움이다. 

이런 때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새로운 방법으로 찾아내고자 하는 독일 과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란 부제의 '인간'이야말로 지구촌시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생성기를 사는 우리에게 무겁게 다가오는 주제이며 우리 또한 이를 무겁게 받아드리지 않으면 안 될 시대적의무로 다가가야 할 담론임이 분명하다.    

피셔교수의 말대로 통합의 중압을 견뎌내지 못하는 서구의 근대식 학문, 결국 그들은 새시대의 도래를 외면하고 계속해서 쪼개는 학문을 계속할 것이다. 이런 무능무책임이야말로 학문의 죄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시대의 소명을 다한 서구식 근대 이성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특히, 그 역사의 굴레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대학인의 각성이 필요한 때다.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가치에 다가가야 할 책임이 새로운 사람들에게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부연하여 한마디 더 하고 싶은 것은 세기의 전환과 더불어 냉전을 청산한 신자유주의가 그 승리를 발판으로 또다시 그 쟁취의 도구인 문명과 자본으로 인류를 위협하면서 자본제국주의를 획책하고 있음을,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 인간이 지금 '지식을 가진 무서운 동물로 변해가고 있음'을 오늘의 대학인은 심각하고도 절박한 문제로 받아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20세기 냉전의 유물과 21세기적 환상이 상존하는 이 땅 한반도에서 모순을 현실로 겪어 내야 했던 우리야말로 이 운명적인 인류사적 가치의 충돌이 그 대안 창출의 배아로 살려 내는 발전적 계기가 돼야 한다고 본다. 이는 바로 우리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 교수는 이 책 '인간'의 첫머리에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라고 희망적인 말문을 열었지만 이내 곧 말머리를 돌려 '과학은, 항상 변화하면서 스스로 완성해 나가는 존재자로서의 인간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고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이제까지의 인간과학에 대하여전면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쪼개는 과학으로는 인간의 본질을 인식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우주과학이나 지구과학 그리고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이 그 대체 수단이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특히 저자는 '내부과학'이라는 개념으로 생물학을 도입하고 이를 인간인식으로의 탐구도구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은 변화 할 수 있고 또 변화하는 동안만 인간이다'라고 단정하면서 '스스로 만들어 가는' 능동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가시적이면서 질량적인 대상에 설정된 학문이 자연과학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연과학적인 영역을 파괴하고 넘어서서 '능동성'이란 주체성 즉 무형의 대상에 인식의 촉수를 넘실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직 저자는 그 '인간의 본질' 즉 생명주체의 능동성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우리대학 건국문 주변에 위치한 인서점 대표 심범섭씨 © 유뉴스 자료사진
어쩌면 이 또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람들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하여간, 결론을 겸하여 다시 말하면, 동물에서 출발했던 우리 인간이 대지를 평정하고 21세기 지구촌시대를 맞이한 그 새로운 환경에서 동물의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인간이라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 날 수 있느냐를 묻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저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 교수의 말대로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변화의 초읽기에 왔고 거기서 인식되는 인간의 새로운 의미는 우리가 열어가야 할 새로운 세상의 씨앗이 될 것임은 명백하다.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인간」, 에른스트 페터 피셔(독일 콘스탄츠 대학 교수), 들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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