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조선족 자치구 간판에 한글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문과 병행하기는 했지만 분명 우리가 쓰는 한글이었다. 백두산과 두만강 일대를 둘러보기 위해 머물게 된 연길시는 같은 민족이 살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줬다.

 

▲한글로 '고려식당'이라고 적힌 간판을 단 음식점이 보인다 © 김혜진 기자

 

음식점에 들어가도 익숙한 언어가 귀를 타고 들어오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백두산을 향해 이동한 5시간 내내 길가에 보이는 간판에 한글이 보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넓은 지역 모두 우리와 한 핏줄이 살고 있는 것이다. 백두산 우리가 찾아간 곳은 백두산 천지였지만, 올라간 산의 입구에는 ‘장백산’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중국은 백두산을 완전히 자국의 산으로 예속시키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백두산을 중국의 10대 명산중 하나로 지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백두산 천지를 찾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한국 사람들이다.

현재는 남북이 갈라져 북을 통해 바로 갈수가 없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멀리 타국을 통해서라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백두산 천지 © 김혜진 기자

 

가파른 경사를 타고 정상에 오르니 천지호수의 깊고 푸른 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지의 맑은 모습은 열 번 찾아가도 한 번 보기 힘들다고 하는데, 하늘도 우리 중국문화기행단의 노력을 알아준 듯 가장 맑고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호수 너머 북한 쪽 모습도 확연히 바라볼 수 있었다. 한 여학우는 “저 곳으로 올라왔으면 더욱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장백산이 아닌 백두산으로 올라와 천지를 바라보는 것! 가까운 시일에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내려와야 했다.

 

▲두만강 일대 다리 너머 보이는 북한 © 김혜진 기자

 

두만강 일대 두만강 너머 북한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운 곳은 불과 2~30미터 정도 밖에 안돼 보였다. 중국과 북한을 이어주는 다리 앞에 서니 다리를 건너보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다리 너머 북한을 바라보는 학우들이 다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용정 일대 해란강이 가로지르는 용정 일대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멀리 보이는 일송정을 지나, 항일시인 윤동주의 모교이자 수많은 항일운동지사들을 배출한 민족사학인 대성중학교 옛터를 찾아갔다.

 

▲대성중학교 © 김혜진 기자

 

현재 옛터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새로 지은 용정중학교에는 우리와 한 핏줄을 지닌 조선족 아이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우리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쓰는 사람들을 실제로 만났고 우리의 선조가 이곳에 살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 “우리는 잦은 왕래와 문화교류 등을 통해 이들과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이준택 이과대 학장의 말처럼 이번 중국문화기행을 다녀온 학우들은 그저 한 때 만난 사람들이 아닌 우리민족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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