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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중국을 가다 - ①북경편
김혜진 기자 | 승인 2005.09.13 00:00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북경

북경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불려지는 3천년 역사의 수도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내려온 만리장성, 자금성, 이화원 등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이 숨쉬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세계 역사의 중심지 북경을 우리대학 학우들 100명이 종횡무진 누비며 고대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왔다.

옹화궁

 

▲용화궁 © 김혜진 기자

 

첫번째로 중국문화와 인사를 나눈 곳은 북경 최대 라마교 사원이었다. 남북의 길이가 400m나 되는 어마어마한 절의 규모뿐만이 아니라 형형색색의 단청과 황제의 궁에만 쓴다는 황금색 기와, 그리고 한어·티벳어·몽고어 3가지 언어로 쓰인 현판은 우리에게는 낯선 것들이었다.

 

▲용화궁 © 김혜진 기자

 

만리장성

중국 고대 문명을 만나기 위해 가파른 경사를 따라 세워진 케이블카를 타고서 산 정상에 올랐다. 그 높은 산등성이에는 산허리를 따라 굽이굽이 산성이 축조돼 있었다.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진나라 시황제가 축조시켰다는 ‘만리장성’이다. 경사가 심해 그저 걷는 것도 어려운데 쌓아올리는 작업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을 증명해주듯 만리장성에 쓰인 돌 만큼 사람이 죽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만리장성 © 김혜진 기자

 

돌 위에 올라서니 마치 내가 이 돌을 옮겨놓은 사람의 몸을 밟고 서 있는 것 같았다. 엄청난 권력을 쥐고서 군림했던 시황제의 권력이 지평선 너머까지 보이는 만리장성의 모습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자금성

 

▲자금성 © 김혜진 기자

 

갓난아이가 태어난 그날부터 27살이 될 때까지 매일 매일 다른 방에 머물 수 있다는 9999개의 방이 존재하는 자금성을 찾아갔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은 궁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자금성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옥좌에서 종종걸음으로 달려 나와 광활한 자금성을 내려다보는 장면을 찍었던 태화전 앞을 지나 천안문으로 빠져 나왔다.

천안문 광장

 

▲천안문 광장에서 © 김혜진 기자

 

1949년 천안문에 올라 인민해방을 외치며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던 ‘모택동’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천안문 밖에는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천안문 광장이 펼쳐 있다. 광장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에서 만난 빈민층 아이와 노인들은 플라스틱 병을 수거하기 위해 관광객들에게 달려들었다.

이 모습은, 엄청난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는 황금색 궁전 자금성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이화원

 

▲이화원 © 김혜진 기자

 

또다시 규모에서 압도 당한 네 번째 문화 유적지는 청조시대 수렴청정으로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던 서태후의 별궁 이화원이었다. 단연 그곳의 으뜸은 거대한 호수 곤명호였다. 곤명호를 만들기 위해 퍼낸 흙들이 쌓여 이화원 뒤쪽에 위치한 만수산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배를 곯는 백성의 원성은 호수 멀리 던져버리고 유유자적 즐겼을 황제들을 생각하니, 청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김혜진 기자  sirius8484@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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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광장에서 ⓒ 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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