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5월 문을 연 인서점, 20년 넘게 학우들과 소통

지난 9월 13일, 우리대학 건국문 근처에 위치한 인서점이 철거됐다. 작은 서점 하나가 철거된 것인데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서점 철거에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과학서점이라는 점도 있지만, 우리대학 학우들과 숨쉬며 20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인서점이 우리대학 근처에 자리잡은 것은 1982년 5월이다. 광주항쟁 이후, 제도언론이 언론의 제 역할을 못하던 시절, 많은 청년학생들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은 어느 때 보다 뜨거웠다. 이러한 학생들의 열망은 수많은 토론과 운동으로 표현되었고, 이를 위해 관련된 많은 서적들이 필요했던 것은 당연했다.

▲인서점 철거 전 내부 모습 © 김봉현 기자

당시 이념 서적이나 노동ㆍ통일에 관한 서적은 판금도서였기에 이러한 책들은 음성적으로 거래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인서점은 판금도서를 많이 출간하는 창작과비평사 등의 책을 취급했다. 또한 출판이 지난 과월호를 구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책을 들여놓기도 하였다. 83학번 최경식(축산대ㆍ사료영양)씨는 “인서점은 전두환 정권 시절, 학생들의 교류 및 정보의 공유공간이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인서점은 학생들의 열망을 채워주는 지성의 공간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던 것이다.

학생들의 사랑은 컸던 반면 인서점이 20년이 넘게 이어오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판금도서를 취급하고, 학생들에게 토론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 주면서 인서점 대표 심범섭 아저씨는 경찰에게 연행을 당하기도 한 것이다. 청년건대 김희중 회장은 “90년대는 경찰의 압수수색이 수시로 있었던 시대였다”며 “압수수색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읽던 책을 숨기기도 하고 자리를 피한 적도 많았다”고 설명한다.

또한, “경찰들이 자주 들이닥친다는 이유로 세 들어 살던 집에서 많은 눈치를 주었다”고 심범섭 아저씨는 이야기한다. 95년 당시 인서점의 위치는 이번에 철거된 인서점 반대편 길목(레떼 부근)에 있었다. 집 주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께서 인서점에게 이전을 요구했다고. 그래서 인서점은 권리금과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인서점을 아끼던 많은 학우들의 관심으로 인서점을 사랑하는 모임(인사모)이 결성돼 모금운동을 벌여 약 5000만원의 돈을 모아 이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인서점 심범섭 대표 © 김봉현
이렇게 어려운 일들을 이겨내며 학우들과 소통해 온 인서점이 2005년 9월, 10년 전과 비슷한 이유로 결국 철거 당했다. 2004년 9월 30일 건물 주 이인규씨로부터 ‘건물인도소송’을 당하여 1년의 싸움 끝에 결국 패소했기 때문이다. 법원으로부터 강제집행 선고를 받고, 9월 13일 최초의 사회과학서점인 인서점은 무너지게 된 것이다.

인서점 철거 이후 그 흔적은 지금 사라졌다. 인서점을 살리기 위해 청년건대가 주도하여 총학생회 등을 구성원으로 하는 대책위원회가 꾸려져 향후 대책을 논의 중에 있다. 또한, 95년 이후 이어져오는 인사모가 이를 후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록 인서점 건물은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학우들과 함께 해온 인서점의 역사는 가슴 속에 기억될 것이다. 인사모 대책위원회의 활동을 기대하며 인서점의 역사가 이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왼쪽 사진은 인서점 철거 전 내부 모습과 철거를 당하게 되어 책을 정리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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