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부재자투표소 설치의 의의

한 달 뒤 우리대학에서 벌어질 일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다. 역사상 처음으로 대학 캠퍼스에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하기 위한 시민·사회단체, 대학생 유권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 대학을 비롯해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등 서울지역 10여 개 대학에서 부재자 투표소 설치를 위한 홍보활동에 돌입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또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부재자 투표소 설치 방법

선거법에 따르면, ‘부재자’의 개념은 “선거인명부 작성기간 만료일(2002.11.5) 이전부터 주민등록지인 구·시·군 밖으로 떠난 자로서 선거일(2002.12.19)까지 주민등록지로 돌아올 수 없는 자”이다. 부재자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구·시·읍·면·동사무소에 가서 신고서를 받아서 작성한 뒤 부재자 투표소에서 투표하면 된다. 그러나 학내 부재자 투표소를 설치하려면 2천 명의 신청서를 받아 25일까지 각 지역 선관위로 보내야 한다.

따라서 운동본부에서는 일괄적으로 11월 22일까지 신청서를 받은 후 선관위로 보낼 예정이다. 지난 10월 30일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중선관위)는 “사회 통념상 통학·출퇴근 거리를 벗어난 지역에 거주하는 자를 부재자로 간주할 수 있다”며 이번 대선에서 ‘부재자 심사’를 상당히 ‘신축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 또한 ‘가능하다’고 밝혔다.

선거일은 12월 19일이며 부재자 투표일은 12월 12일부터 14일까지로 기말고사 기간(9일∼13일)과 겹치지만 대학생 부재자 유권자가 6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2002 대선에서 ‘투표소 설치’가 갖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재자 투표소 설치의 의의

첫 번째, 대학생 부재자 유권자는 후보자 당락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다. 97년 15대 대선에서 당락은 30만 표 차이로 결정됐다. 당시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대학생 유권자 230만 명 중 부재자가 53만 명이었다는 사실은, 부재자 유권자들의 투표참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두 번째, 부재자 투표소 설치는 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던 대학생 유권자들의 저조한 투표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다. 남은 한달 동안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를 위한 홍보와 이벤트가 대대적으로 펼쳐진다면, 부재자 유권자 60만 명 뿐만 아니라, 훨씬 많은 대학생들의 투표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정대화 교수(상지대·한국정치)는 이번 대선을 좌우할 ‘3대 폭풍’중 하나로 대학생 투표 참여를 꼽았다.

세 번째, 부재자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의 진전과 정치발전이 이루어지고 대학인들이 성숙해질 수 있다.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직접 대통령을 뽑음으로써 교재에서만 봤던 ‘민주주의’를 직접 실천할 수 있다. 부재자 신청서 접수 기간 동안 학내에서 치러질 다양한 토론회, 이벤트, 퍼포먼스, 정치특강 등은 학생들의 ‘토론문화’를 꽃피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아울러 7, 80년대 피어린 투쟁을 통해 쟁취한 ‘직선제’가 대학생들에게 ‘참여 저조’로 희석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학내 부재자 투표는 ‘민주주의의 산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대학은 이렇게 할 것

대선이 불과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향후 5년의 삶의 방향을 결정할 이번 대선에서 대학 내에 부재자 투표소가 설치되기 위해서는 학생, 대학당국, 교수, 선관위, 그리고 정치권 등 각계각층의 적극적 참여가 절실하다.

가장 먼저, 민족건대 유권자 운동본부는 대학내 부재자 유권자들에게 신청서를 받기 위해 강의실·기숙사 등 학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화요일마다 학관 앞에서 선전전을 할 예정이다. 덧붙여 오는 18일 정오에는 탤런트 권해효씨와 함께하는 부재자 신청 캠페인이, 15일에는 각 정당 의원들이 참석한 토론회가 진행된다. 이같은 다양한 캠페인과 이벤트는 ‘정치 무관심·불신·냉소’가 지배하는 ‘취업 경쟁의 장’인 캠퍼스를 ‘축제의 장’으로,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토론의 장’으로 만드는 시도이다.

한편, 대학당국은 운동본부의 취지에 공감하며 2천 명이 되면 선관위에 협조 요청을 할 수 있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그러나 운동본부 면담 결과 광진구 선관위에서는 “지지와 지원은 일절 할 수 없으며 학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는 고려해 보겠다”는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는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인만큼 ‘관례‘를 뛰어 넘는 시도를 해볼만하다. 박병섭 교수(상지대·선거법)는 “우리나라 선거법은 서구와 달리 ‘규제’중심이다. 당장 선거법 자체를 개정할 수 없는 조건에서 기존의 관례를 벗어난 과감한 정책도입이 필요하다”며 부재자 투표소 설치에 대한 선관위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얼마전 대학생 정치참여를 위한 대학언론인운동본부에서 서울지역 대학생 5백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아직까지 ‘부재자 투표소 설치’에 대해 73%의 학생이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부재자 투표소 설치를 통해 정치참여의 신선한 바람이 우리 대학에 불어오길 기대해본다.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공동기자단/정리 김주희 기자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