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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여주댁, 13일에 같이모여 우리쌀 지키러가세~우리쌀지키기 전국농민대회를 준비하는 여주군을 찾아서
홍미진 기자 | 승인 2002.11.11 00:00

11월 13일, 30만 농민들이 서울로 온다. 달구지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온다. 이 거족적인 버스 행렬 뒤에는 여주군 농민들의 열띤 토론이 있었다. 각자의 논·밭에 메여있던 농민들을 하나로 합치자고 한 것도, 이장을 관인으로서의 족쇄에서 끄집어내 농민 대중을 이끌게 한 것도 여주군 농민들이었다. 일제시대 때 조선인 10명 중 한 명이 독립운동을 했던 것처럼, 농민을 살릴 투쟁을 위한 대대적 궐기가 요구될 만큼 상황이 절실해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주군 농민들은 4백만 농민을 대표해서 40만이 투쟁을 일으킬 것을 제안했었다. 그러나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 40만을 모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30만을 목표로 하기로 했다. 그 ‘우리쌀지키기 전국농민대회’를 준비하는 발걸음을 찾아, 여주군 농민회로 향한다. 이른 10시 차가운 대기 속에서 여주군 농민회가 있는 읍내에는 서울과 다름없이 차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간다. 그런데도 삭막하고 뭔가 허한 느낌이 드는 것은 농촌에서 느껴져야할 훈훈한 웃음이 잊혀졌기 때문일까?

가게들이 가득한 건물 3층에 위치한 농민회에 들어가자 흙갈 색 얼굴에 억센 농사에 다져진 모습의 농민회 분이 맨처음 기자를 반겨줬다. 아침회의가 시작하기 전부터 각 마을의 전국농민대회 준비일정을 일정표에 적느라 분주하다. 회의는 신동선 사무국장이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버스 한 대를 후원하겠다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갑작스런 전화에 흙색의 눈가에 웃음을 띤 채 농민회 임원들은 마을 구멍가게 앞 대청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듯 토론한다.

이 토론은 자연스레 구체적 홍보방안으로 넘어간다. 전단지 뿐만 아니라 정식 편지의 양식을 빌려 농민들에게 전국농민대회의 소식을 전하고 참여를 유도하기로 했다. “전단지나 편지는 그저 홍보일 뿐이야. 농민들을 직접 만나봐야지.” 신동선 사무국장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이어서 13일 버스 출발 시간 결정과 함께 버스가 이용할 도로 정하기, 엠프 구하기 등이 거론됐다.

특히 13일에 이동하는 농민의 규모가 너무 큰데다가 같은 날 이동하기 때문에 일이 매우 복잡해서 처리가 정확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마무리하고 농민회 임원들은 아직 전국농민대회에 대해 잘 모르는 마을인 금사와 산북, 그리고 준비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점동과 여주읍에 들르기로 했다. 기자는 최재관(전국농민회 총연맹 여주군 농민회 정책국장)씨를 따라 점동과 여주읍을 방문하기로 했다.

점동과 여주읍으로 향하는 트럭에서 최재관씨는 문뜩 문뜩 빽미러로 뒷자리의 우리를 보며 쌀 개방 문제를 꺼낸다. “쌀을 개방하는 건 분명히 부당한거야. 쌀은 무역의 대상이 아니야. 쌀 문이 열리면 남은 것들도 차근차근 하나씩 열릴꺼고 결국 모두 무너질꺼라고. WTO법 중에 NTC라는게 있어. 비교역적 고려요소라는 건데, 한마디로 개방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는 거야. 쌀은 당연히 NTC 여야해.” 사실 쌀을 개방했을 때 농민의 소득이 그만큼 줄어들 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농총경제연구원에서는 쌀 개방시 쌀값 하락으로 인한 농가소득감소가 42%가 될 것이라 발표하기도 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농민들은 더 어려워.” 갑자기 농민의 어려움을 얘기하려해서인지 최재관씩의 얼굴빛이 어두워진다.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농민들에게 노동비는 없어. 노동비 없이 씨 사고, 농약 산것들 합친 것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에 받으면 그게 ‘번거’야.” 자신이 흘린 땀과 그로 인한 골병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우리 농촌의 현실.

어느새 점동마을에 도착해 과수원에서 이장을 만났다. 아직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농민들이 이장집을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나보다. 그러나 이장에게는 다른 부담감이 있다. 안정을 보장하는 문제라든지, 만일의 사태에 대한 책임 등의 문제들이 이장에게는 큰짐이 되는 것이다. 사실 농민들을 이끄는 데는 큰 각오가 필요하고, 농민항쟁의 필요성을 인식했더라도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면 주저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이럴 때 주위 사람이 해주는 말 한마디의 위로는 큰 힘이 된다.

최재관씨가 농민대회의 안전을 이야기하자, 이장은 찬바람에 회색 빛 담배연기를 날리며 “알았어”라며 꾸짓 듯 말한다. 이장의 퉁명스러운 것 같은 대답속에서, 어려운 상황에서 피어나는 농부들의 돈독함이 느껴졌다. 다시 나무 밑둥에 검은 흙을 덮는 이장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최재관씨의 얼굴에 지긋한 웃음이 담긴다. 여주읍의 이장이 다른 곳에 가서 만날 수 없게 되어 우리는 엠프를 가지러 연라 1리로 갔다. 전국농민대회에서 쓸 엠프는 물론이고 홍보 용 엠프도 필요한데, 여주군 농민회가 가지고 있는 엠프는 단 2개다. 그래서 부족한 엠프를 각 정당에 요청할 계획이다. 실상 농민회에는 엠프를 살만한 여력이 없다.

전국농민대회를 준비하는데는 많은 돈이 필요한데 그 자금은 이장과 농민회원을 비롯한 농민들이 낸 쌀들로 마련했다. 다들 현실의 절박함을 알고 투쟁의 중요성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쌀을 걷는 것은 자발적으로 원활히 이뤄진다고 한다. 그러나 기본 생활비정도만 그때그때 가지고 있는 농민들이기 때문에 일정량의 쌀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알기에 농민회에서는 지역 농협에 약간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지역 농협에 각 마을 당 300만원을 지원해달라고 했어. 13일에 농민들이 밥은 먹어야 할 거아냐. 근데, 도와줄 수가 없데. 마을이 8개나 되는데, 총 300만원을 지원하겠다는거야. 그래서 차라리 안받는다고 했지. 그 돈으로는 농민들에게 밥은 커녕 따뜻한 차 한잔 못 사준다고.”

그래서 농민회는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있다. 결국 농민들의 지원금이 좀더 여유있는 마을 농민회가 부족한 자금을 조금씩 지원하기로 했단다. 최재관씨와 함께 엠프가 트럭에 부딪쳐 깨지지 않도록 손잡이를 조심히 고정시키고 여주군 농민회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얼은 손을 녹이며 바로 다녀온 결과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간 곳과 달리 금사와 산북의 농민들은 전국농민대회에 대해 매우 궁금해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하는 건지 적극적으로 물어보기도 했단다. 농민회가 없는 마을에서는 자체적으로 농민회를 만들기도 한다고.

가끔은 이 커다란 투쟁에 겁이 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농민대회가 차근차근 준비되는 것은 ‘우리쌀지키기 전국농민대회’가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이이다. 우리 모두는 이처럼 각박한 농촌의 현실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것은 아닐까?

홍미진 기자  h-logall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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