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무엇일까? 휴스턴 공항에 내려서 이 곳 오스틴까지 오는 3시간 반의 드라이브 동안 차창 밖에 비쳐진 미국의 자연 경관은 한마디로 ‘스페이스, 스페이스, 그리고 또 스페이스’였다. 광활한 공간, 땅에 대해 전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는 인디언들의 문화가 공감될 만큼, 충분하고도 남는 땅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덩달아 젖어든 풍족함의 너그러움은 잠깐이었고, 습관처럼 켜본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온 호전적인 일련의 단어들은 빈약한 청취력에도 불구하고 묘한 전운의 긴장감을 실감시켜 주었다.

그래, ‘전쟁의 나라’, 이렇게 표현하면 지나친 것일까? 자유의 여신상을 미국의 상징으로 생각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나라’라는 별칭이 무례하게 들리겠지만, 알라모의 패전 이후 전열을 다듬어 스페인과 멕시코의 연합군을 차례로 격파했던 미군의 진격 경로를 그대로 따라 달리면서 이라크 다음은 한반도라는 무력시위의 방송을 듣는 필자로서는 ‘전쟁’ 역시 미국을 표현하는 단어로 손색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아서일까? 이곳 로스쿨의 탈튼(Talton) 도서관을 드나들던 2주만에 서툰 영어로 사귄 한 친구가 자랑삼아 구경시켜 주겠다며 데리고 간 LBJ(Lindon B Johnson)박물관은 보다 일목요연하게 미국이 왜 전쟁의 나라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존슨 대통령의 생애를 더듬어 가며 미국 역사의 중요사건들을 스크랩해 놓은 이 박물관은 결국 1차 대전, 2차 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중동 전쟁으로 연결되는 전쟁 시리즈였고, 사이사이에 양념 삼아 내걸어 놓은 문화적 이벤트라고 해야 베이브 루드와 엘비스 프레슬리, 그리고 할리우드 정도였으니, 안 그래도 잔뜩 웅크리고 있던 필자를 이 곳에 데리고 온 미국 친구의 배려는 그리 현명한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집어 든 책, Nye의 「The Paradox of American Power」는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하드 파워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미국의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미국의 하드 파워가 얼마나 강한지를 은근히 시사하고 있었다. 군비지출의 규모가 다음 순위 8개국을 합친 것에 맞먹으며, 전 세계 경제력의 27%를 차지하는 미국의 경제 생산력은 다음 순위 3개국(일본, 독일, 프랑스)의 경제력을 합한 것과 역시 맞먹는다는 계산이니, 적어도 현재로서는 부동의 슈퍼파워라는 설명이다.

그러니 움직여보고 싶은 것일까? 힘이라는 것이, 있으면 쓰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세계를 향한 호령은 그렇다 치고, 내부적으로도 미국사회는 점점 더 힘에 의한, 힘을 위한, 힘의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미국을 자유와 인권의 나라로 상상하는 사람들에게 100명당 2명이 구금시설에 수용되어 있으며 덧붙여서 4명은 보호관찰의 감시를 받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사실이 실감날까?

1980년도 이후 20여년 동안 미국의 형사사범 증가는 강성 드라이브를 계속 재촉하면서 남아공과 러시아를 차례로 끌어내리고 인구비율 수형자 수의 수위 자리를 너끈히 차지하였다. 단순절도 3회로 종신형을 선고받는 소위 삼진아웃제도가 저항 없이 채택되고, 경찰의 가차없는 물리력 행사의 장면들이 인기 프로그램으로 방영되는 나라, 그래서일까, 소프트 파워의 대표적인 것으로 선전되는 할리우드의 범죄영화에서도 막판에는 예외 없이 터프한 경찰이 영웅처럼 나타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자본주의 법 명제가 철저하게 실감되는 사회, 그러니 밀림에서처럼 나를 지키기 위해 총기소지까지 허용된다.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한다면 얼뜨기(geek)가 된다는 한 교포 후배의 충고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지 15년 동안 그가 얼마나 처절하게 처세를 터득하게 되었을지 동정 어린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니 법률가는 대접받는다. 힘에 대한 선호는 따지고, 문서화하고, 쟁송하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정착시켰다. 그런데, 법으로 먹고사는 처지임에도 법에 대한 의존이 절대적인 이런 종류의 사회를 보면서 반가움이 일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수일 밤을 뒤척이다가..., 평가는 차후이고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쪽으로 나름의 정리를 하였다.

힘의 문화, 그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누가 쥐고 있고, 누가 당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실행되는가? 굳이 연구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자문에 대한 해답의 모색을 일상의 과제로 설정한 터라면, 가장 미국적인 주, 텍사스가 적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보다 진지해지기 위해 자기 나라 미국을 ‘불량국가(rogue state)’로 표현한 Chomsky의 책들도 일단은 멀리하기로 했지만, 1년 후의 나의 가치가 어디로 경도될지는 아직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