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난 모두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된장녀’입니다. 스타벅스 커피라면 사족을 못 쓰고, 직접 찍은 비싼 음식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이 취미입니다. 명품 하나는 걸치고 나가야 거리를 걸을 맛이 나죠. 돈은 쓰느라 바빠요. 내 돈은 내 돈이고 남자 친구 돈도 내 돈이죠. 자, 된장녀라고 손가락질 하실 건가요? 설마 제가 ‘응애응애’ 울며 태어났을 때부터 허영 많은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겠습니까! 일단 비난은 접어두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어느 날부터 저의 생활양식이 인터넷으로 급속히 퍼져 화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됐죠. 그런데 궁금했어요. 사치와 허영, 경제적 의존 등이 저만의 문제인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제 사진에 비난하는 댓글을 단 여자의 홈페이지를 링크를 통해 들어갔습니다. 그 여자도 ‘생일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웃백에서’란 제목의 사진이 가득하더군요. 남자들도 마찬가지에요. 멋있고 비싼 차나 명품을 소유하는 화려한 꿈을 꾸잖아요.
여자들은 남자 친구와 데이트할 때 비용을 얼마 냅니까? 명품을 사달라고 조르는 저와 비용의 규모만 달랐지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기대한다는 점은 대개 다르지 않잖아요.

그런데 왜 유독 저를 비판하죠? 제게 잘못이 있다면 그 대열의 선두에 선 것뿐인데요. 매스미디어론을 강의하는 이재호 강사님은 “사람들이 이성과 감성의 혼돈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하더군요. 자신은 따뜻한 이성으로 옳은 행동이라고 평가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차가운 감성으로 판단해 속된 말로 ‘골이 비었다’고 하는 겁니다. 마치 자신이 ‘빕스’를 가는 것은 로망이지만 제가 가면 사치인거죠. 이런 이중적인 판단의 잣대가 얼마나 황당한지!

된장녀를 만든 독극물은 누가 방류했나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들어보세요. 제가 왜 이렇게 외모를 가꾸고 돈 되는 것만 찾는 빚 좋은 개살구의 삶을 사는지 아무도 모를 겁니다. 매체를 보고 여자는 뛰어난 외모가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예쁘기만 하면 돈 많고 멋진 남자가 나타나 인생을 바꿔주잖아요. 특히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매력적인 뉴요커처럼 되고 싶어요. 이재호 강사님은 “미디어에서 강조하는 가치를 최고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거대 기업의 광고와 결탁해 화려한 것만 보여주고, 치부는 들어내지 않기 때문이죠.”라며 충고하십니다.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 공부하고 노력하죠? 텔레비전에서 나온 것처럼 고급 상표 옷을 입고 세계에 체인점을 가진 고급 음식점의 비싼 음식을 음미하며 도도한 척하면 뉴요커 되고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잘난 남자들의 주목을 받을 겁니다.

저를 싫어하는 남자들도 얼마나 많은지요. 비판하는 댓글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 중에 특히 “여자는 원래 경제에 대해서는 지식도 없고 고민도 없는 문외한이야. 그러니 계획 없이 남의 돈으로 과소비나 하지!”라는 댓글이 제일 당황스럽습니다. 20대인 내가 개념 없는 된장녀라고 비판을 받았다고 마치 여자는 선천적으로 역량이 부족하다고 일반화해도 되는 겁니까? 이에 대해 문화 평론가 김헌식씨는 ‘여성은 경제적인 무능력자다’라고 비판하는 남자들이 사실은 여성을 무능력하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사실 이 문제의 이면에는 오늘날 남자들이 여자들 때문에 느끼는 위기의식이 있다고 언니네트워크의 어라 사무국장님은 말하시던데요. 유교 가부장제를 기반삼은 우리 사회는 출산, 양육을 도맡아 하며 남편의 월급으로 살림하는 것이 여자의 미덕이자 위치였잖아요. 그런데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남자들과 비등한 경제력을 갖춘 경쟁자로 위상이 바뀌었죠.  전통 사회에서 기대하는 여자의 역할은 도외시하면서요. 상황이 이러자 남자들이 여자 위에 군림하는 것이 힘들어졌고, 값비싼 재화를 소비하며 경제력을 행사하는 여자들을 안 좋게 매도하는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개념 없는 저도 이런 상황은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하물며 자신의 소득으로 정정당당하게 소비하는 여자들은 오죽 할까요!

어떠세요? 제가 혼자 만들어진 괴물이 아니란 것을 아시겠어요? 사람들은 제가 행복하고 편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 타의적이고 의존적인 제 삶이 싫을 때가 있죠. 달라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만 바뀐다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아요. 우리 사회 모두가 달라져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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