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보다 푸르른 청명한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매력적인 가을이 오는가 싶었다. 갖가지 색깔을 넘나들며 팔레트에 물감을 풀어내듯 제3의 색조를 만들어내는 고전적 아름다움인 단풍이, 사람들을 유혹하는 가을이 오는가 싶었다. 그런데 계절을 앞서가는 차디찬 칼바람은 내가 이런 즐거움을 누릴만한 자유를 무참히 ‘상실’ 시켜버렸다. 아! 미운 바람이여! 당신 어찌 이리 고약하단 말인가!

그래. 계절은 그럴 수 있다고 해두자. 그건 내 개인적인 취향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상실은 계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국을 휩쓸고 있다. 밥값도 못하고 매일 싸우기만 하는 정치권을 향한 국민들의 감정은 분노를 넘어 이제는 상실에 젖어들었고,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지금 집 사면 손해 본다.”고 언죽번죽 말하다가 되레 국민들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은 청와대 홍보수석은 자기 자리를 상실했다.

한 방송국에서 보도한 우리대학의 연예인 특례입학자들 실태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물론 대학의 낭만적 즐거움은 상실한 채, 취업에 치여 거친 숨을 몰아쉬는 우리들을 한 숨 짓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국민들이 느끼는 상실감이 더 큰 절망감으로 커지는 것은, 이 체제의 견고함이 도저히 깨질 것 같아 보이지 않아서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에 각 계층별 소득격차가 참여정부 출범이후 최대치로 벌어졌다고 한다.

강남 어디의, 신도시 어디의, 어느 지구 아파트의 대열에 들어보려고 애를 쓰는 동안 부동산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치솟아 버렸다. 사교육 시장과 절묘하게 맞물린 부동산 획득은 승자독식구조를 더 공고히 해버렸다. 월급을 모아 서울에서 아파트를 산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 되 버렸다.

그러한 우리사회는 이제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이런 상실감을 가진 채 굴복하며 살아갈 가느냐 아니면 상실감을 넘어설 새로운 사회적 합의의 틀을 만들어 내느냐.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사막을 터벅터벅 걷던 목마른 사람이 물과 야자나무가 있는 환상을 경험하는 것을 일컬어 오아시스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그건 믿음의 증거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물에 대한 간절한 욕구 때문이다. 갈증은 물에 대한 환각을 낳았고, 물신주의의 욕구는 강남불패의 환각을 만들어냈다. 그런 우리는 상실의 시대에서 오아시스 콤플렉스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환각의 상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는 것 또한 우리다. 이제 시장의 논리에 맡김으로써 얻은 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끝내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갈아타야 한다. 그래서 이 환각의 장막이 걷어버려야 한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상실의 시대에서 벗어나 실재의 오아시스를, 실재의 한국경제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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