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대신문 제1133호(2003년 9월 22일 자)「정문일침」란에 실린 “나는 고백한다” 글을 잘 읽었다. 우리 학교 내의 ‘사상의 단조로움’을 깨고 모처럼 좋은 글을 만난 것 같아 무척 반가웠다. 나 역시 딱히 진보적이라고 할 수 없는 대학생으로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진보성’ 때문에 고민도 많이 하고 부담도 많이 느꼈었다. 그런 점에서 대학사회에 사상의 다양성이 존재해야 한다는 필자의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그런데 필자의 글을 읽으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 글을 적어본다.

필자는 글에서 자신이 보수주의자임을 밝히고 학교 내에서 그러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리고 소위 진보라고 말하는 목소리 말고도 다양한, 보수적인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 학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대학사회의 사상지형이 지금처럼 굳어진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필자는 ‘대학사회에서는 기득권자’인 진보세력에게 그 책임을 넘기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의 정치스펙트럼이 지나치게 왼쪽으로 중심 이동해 있는 데에 그 한 원인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 책임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한번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필자는 대학사회 안의 진보세력에게 면죄부를 준 듯 하나 전체적인 글의 느낌은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넘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학 4년 동안의 필자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 고충 때문에 문제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학사회의 진보세력이 남의 말을 막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 뜻이 원리주의로 흐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대학사회에서 보수주의자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볼 때 문제의 원인은 보수주의자들 자신에게 있다. 그들의 불성실함 혹은 용기 없음이 문제다. 왜 자신 있게 말 못하는가. 대학 안에서 자유롭게 말하는 것은 대학생들의 권리일 것이다. 그 권리 위에서 잠만 잤다면 그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것이 더 옳았을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보세력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성실함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많은 사상투쟁 끝에 얻은 것이니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다양성’을 요구하면서 보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나오길 바란다면 좀 어렵지 않을까. 그들은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들의 준비를 종용하는 글이 되었다면 필자의 뜻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몇 가지 덧붙이자면 ‘민주화’라는 용어 사용 문제다. 필자는 지금도 민주화 시대라고 얘기하고 있고 80년대도 민주화 시대라고 얘기하고 있다. 민주화는 이미 끝나지 않았나. 지금은 민주주의의 공고화 시기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지금의 한국 정치스펙트럼의 중심이 왼쪽으로 이동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지나친 비약, 아니 거짓이 아닌가. 우리 사회는 해방 정국기부터 지금까지 보수적 이념들이 꽉 잡고 있다. 정말 참신한 의견이긴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필자의 말처럼 민주주의 사회 그리고 최소한 대학사회의 미덕은 다양성 존중과 자율성일 것이다. 그렇지만 글의 전반적인 견해가 일면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자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다양성 존중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길’은 아닌 것 같다. 여전히 우리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진실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작의 고통에 비해 비판이나 비평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필자의 노고에 내가 너무 쉽게 펜을 든 것은 아닌지 고민스럽다.

장성룡(정치대·정외4)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