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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 고양이(3)<건대신문> 문화상 당선작 - 소설부문
건대신문사 기자 | 승인 2007.01.04 00:00

그대에게
이제 슬슬 날씨가 차가워진다. 길을 걸으면 단풍이 우수수 떨어져 어깨를 스치곤 해. 올려다보면 어느새 거의 다 떨어져 앙상해진 단풍나무만이 보이는구나. 즐겁고 기쁜 가을은 지내고 있니? 나는 창가로 들어오는 빛을 부드럽다 여기며 잔뜩 늘어져 있어.
오늘은 솔직히 고백을 할 생각이야. 무슨 고백일까. 사랑 고백일 수도 있으니까, 바짝 마음을 단단하게 먹는 게 좋아. 우리가 만난 지 어느새, 보자. 그러니까 초등학교 오학년이었으니까 벌써 구 년이 지나버렸네. 아니지. 정확히 하면 오 년 전인가? 고등학교에 와서야 제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으니까. 이야기라기 보단 이렇게 주고받는―정확히는 주는? 어쨌든 그런 편지지만 정말로 즐거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 그런 기회를 준 너에게 정말로 감사해.
내가 쑥스러워하며 쓰던 첫 번째 글에는 앞으로 보낼 편지는 나 자신에 대한 변명이니까 부담스러워 하지 말아 달라고, 너에 대한 부탁으로 시작했지. 답장은 해주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그냥 받아서 읽어달라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는 작문 실력이 느니까 괜찮아 라고 했지. 그런데 말이야. 솔직히 편지를 쓰면서 네가 답장을 해주었으면 했어. 매일매일 집에 돌아오면 우체통을 확인했지. 네가 쓴 편지가 와 있지는 않을까 하고. 나―글만큼은 어떻게 쓸 수 있어. 그래, 네가 보낸 편지에 나는 그런 말을 했지. 글. 왜 글만 쓰는 거야? 요즘 같은 때에 편지를 주고받는 건 오래되었다고. 차라리 전화나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그랬잖아.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 그냥 다른 주제로 얼버무렸어. 거기에 대한 답변 지금 할 생각이야.
사실 나 호모야. 진실이야―거짓말. 사실 나 말을 잘 못해.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말은 “안녕”이라는 인사 뿐. 그 외에는 내가 분명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은 이상한 표정을 지어. 제멋대로 이야기해버리는 거지. 그러니까 나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 그래서 학교에서는 이상한 아이로 통하고 있어. 선생님께 나는 말을 못한다고 이야기해두긴 했는데, 전에 이야기하는 걸 보았던지라 믿지 않는 기색이야. 부모님과는 크게 싸운 뒤로 나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니까. 설령 신경 쓴다고 해도 너와의 거리만큼이나 멀리 있으니까 아무것도 해주실 수 없어. 누나와도 거의 이야기하지 않아. 너와 고양이―전에 이야기했었지?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녀석 말이야―만이 나와 이야기하는 유일한 관계야. 믿든 말든 진실이니까. 믿어주었으면 해.
나, 다음 주면 집에 내려갈 것 같아. 시간되면 그때 한번 쯤 보는 게 어떨까? 글로 쓰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게, 직접 경험해보는 게 더 이해하기 편할 거야. 물론 마음은 단단히 먹고 오는 게 좋아. 내 말을 잊지 말고서 단단히 각오하고.
조심하고 늘 행복하게.
신려 깊고자 하는, 너의 친구로부터

CATZ

노란 편지지를 세 번 접어 하얀 봉투에 넣었다. 깨끗하게 접은 뒤 딱풀로 봉했다. 그러고 나서 오른쪽 아래에 그녀의 주소와 이름을 적고, 왼쪽 위에 내 주소와 이름을 적어 넣었다. 이제는 익숙한 손놀림이다. 쓰고 붙이고 보내는 그런 일을 이제는 눈을 감고도 너의 주소를 적을 수 있고 손을 뻗으면 필요한 모든 도구를 다 한 번에 잡을 수 있다. 너는 나에게 이만큼이나 익숙한 존재로 다가와 있다. 선명한 이미지이자 낯익은 습관으로.
자, 이제는 다음 주가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이 편지를 받아든 너를 상상한다. 그리고 너를 만나는 그 순간을 한없이 머릿속으로 되새기고, 기뻐하고 그리고 즐기며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원한다. 나는 오직 너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다. 하루가 지나가고, 또 하루가 지나가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나는 시간이 흐르는 끝에 서서 멍한 눈으로 그대를 기억하고자 했다. 만나서 당황하지 않도록, 마음을 추스르는 주문을 외우며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마침내 너를 만나는 날이 왔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바로 그 날이 앞으로 몇 시간 후면 시작된다. 눈이 반쯤 감겨 잠들 것 같아도 몰려오는 희열과 기대감에 잠들 수 없었다. 드디어 너를 만난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보다 더 흥분해버렸다. 무엇하나 생각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지내왔던 삼 년 동안의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 지었던 그 날 보다도 더. 선생님의 얼굴은 케이크로 범벅이 되었고, 밀가루에 계란을 섞은 폭탄을 제멋대로 아무에게나 던졌다. 그런 즐거웠던 추억보다도 너와의 만남 쪽이 훨씬 더 흥분된다.
지금 너에게로 달려가고 있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줘.

멀리에서 네가 손을 흔들고 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나를 기억해주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기다리는 모습을 조금 더 보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빨리 걸을 수 없는 게 안타깝다는 듯 허둥대는 척 했다. 사실 너에게로 가는 길은 누구보다도 더 확실히 펼쳐져 있다. 사람들 사이로 달려가 너의 앞에 도착할 수 있는 길이 내 눈에는 확실하게 보인다.
아쉽다. 나만을 기다려주고, 나만을 위해 손을 흔드는 너. 이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액자에 영원히 보관할 수 없을까. 너에게 다가가는, 활짝 웃고 있을 나의 얼굴과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는 너의 얼굴을 나란히 그린 그림이 어디 없을까. 안타까움은 마음 깊이 날리는 바람이 되어 우수수 떨어지는 단풍을 친구로 삼는다.
마침내 너에게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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