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대신문> 문화상 당선작 - 소설부문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크게 한 후,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모든 일은 나를 통해 지나갔다. 죽음, 낯설면서도 친숙한 이름. 나는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내가 예뻐하는 너를 보내고 나서도. 지금은 하나의 작은 용기에 담긴, 하얀 재로 남은 너에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대에게
“안녕.” 이라는 말만큼은, 자신 있게 너에게 할 수 있는 말 중에 하나이다.
그래, 나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렇게나 나를 저주해. 다른 어떤 말도 너에게 할 수 없어. 어긋나 버린다. 말할 수 없기 보다는, 바르게 전달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어. 편지를 쓰고 지우고,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이 올바르게 전달될까. 그것보다 우선 내가 제대로 된 단어를 선택한 것인가 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모두에게 쉬운 일이겠지. 글을 쓴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더라도 쓴다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겠지.
하지만, 하지만 나에게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쉬운 일 조차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올바른 단어를 골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실제로는 전혀 다른 엉뚱한 단어를 골라서 써버리니까. 너를 만나고 너와 함께 걸어도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건, 너를 좋아하는 이런 내 마음이 올바르게 전달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야. 아마 이 편지를 읽고 있을 즈음이면, 이런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았을 테니까, 이렇게 편지로 덧붙여둘게.
알고 있어, 너의 대답쯤은. 왜 미리 말하지 않았냐고 하겠지. 나는 몇 번이나 말하려고 노력을 했어. 그리고 실제로 말하기도 했지. 그리고 나는 좌절을 느껴야만 했다. 나는, 나는 그러니까 나는 말했어. 너와 함께하길 원한다고. 그러자 너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 처음에는 전달되었다고 생각했다. 내 진심이, 내 마음이 너에게 온전히 전달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너는 갑작스럽게 이상한 단어를 나열하는 나를 두고 웃고 있었어. 그 미소의 의미를 알았을 때 나는 나를 구속하고 있는 강렬한 저주에서, 내 인생의 지독한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치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였으니 이제는 네가 나아가 보라. 그러나 내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살갗에 새겨진 문신처럼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내 몸 구석구석에 남아있다.
아직까지도 너를 좋아하고 있냐고? 솔직히 잘 모르겠어. 수백 번 되뇌며 생각했었으니 쉽게 입에서 나올만한 말인데도, 편지를 읽을 너를 생각하면 그리 쉽게 펜이 움직이지 않는구나. 그러니까 직접 물어본다고 해도 대답할 수 없겠다. 분명 좋아했던 건 분명해. 내 마음이 이렇게나 두근두근하며 외치고 있다.
나는 말했다. 왜곡되어 전해진다고 해도 진실을 전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나는 생각했다. 고민하다보면 무언가 방법이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제는, 이제는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 조용히 있는 게 좋다. 남의 눈에 벗어나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살아나가자. 그렇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꿈을 꾸곤 해. 죽은 후 묘비에 ‘평범한 사람이 여기에 묻혀있다.’고 적혀있는 꿈을.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은, 추함을 버리고 아름답게 살았다고 기억하는 꿈을.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지난 시간동안 내가 배운 것은 한가지 뿐. ‘남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곁에서 항상 머물러 있어라. 그러면 네가 구하고자 하는 답을 찾을 수 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뜻이야.
왜 그런 삶을 살아야하냐고? 너는 느껴보지 못했겠지. 정상으로 산다는 게 나에게 얼마나 힘든지를. ‘문둥이 자식아, 문둥이 자식아.’ 라고 놀림 받고 ‘멍청한 자식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말을 못하냐.’ 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으며 살아야 하는 삶은 뭐든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돼. 말을 하려고 노력을 했다. 정상이 되려고 노력을 했다. 너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손을 깨물고 손톱을 질겅질겅 씹어 먹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야기하든지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에 담긴 내 진심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든지 괜찮다고 생각했어. 모든 일이 끝난 후, 나는 사람들의 앞에 서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내뱉었다. 그건…….
재미없지?
이쯤에서 그만하자.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밝은 내용만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이런 이야기만 늘어놔서 미안해. 잘 전해지고 있을까. 글을 쓰면서도 의심하고 있어. 말 뿐이 아니라 글에서도 멋대로 다른 단어로 바꿔 쓰지는 않을까 하고.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잘 되고 있는 것 같으니까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겠다. 다음 주에, 너무 바빠서 편지를 쓸 시간이 안 되면 그 다음 주에 다시 쓸게. 잘 지내.
조심하고 늘 행복하게.
신려 깊고자 하는, 너의 친구로부터

P.s 새해가 되기 한 달 전인 오늘, 다미가 죽었어.
CATZ.

슬픔은 눈을 자극하는 꽃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이제 겨울을 피할 수 없구나. 차가운 바람이 불어 창문을 닫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왔다. 마음 속 깊이 파고드는 추위가 하얗게 모든 것을 얼려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고 피할 수 없는, 그래 그렇지-이런 저주받은 생이 거두어질 때까지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 누구도 구원할 수 없는 여기에서, 영원한 삶을 지속한다. 오, 나의 삶이여. 오, 나의 꿈이여. 슬픔은 그대의 몫이구나. 나 돌아가야 할 그 날이 오면 그대들을 박차고 일어나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겠소. 여기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으니 멋대로 살아감이 당연하지 않겠나. 언제 올지 모를, 네가 나에게 손을 뻗어주기를 기다리며, 그대들을 친구삼아 지내겠소.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나는 입가를 빠르게 움직이며 되뇐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이대로 나 또한 죽음으로 나아가야 할 뿐.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나의 삶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오직 침묵만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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