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잉-

높이 든 우산을 힘껏 돌려 본다

빗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철썩-

고여 있는 빗물을 힘껏 걷어 찬다

흙탕물에 바지가 젖는다.

“비 맞지 마래이. 감기 걸릴라. 서울 비는 맞으마 머리 빠진다 카드만.”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어깨에 얹힌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비 오는 날

할머닌 안터 논배미 물꼬를 트러 가시곤 했다.

남편도, 둘째 아들도 비 오는 날 하늘에 묻었다.

우산도 없이 물꼬를 트고 돌아오시는 할머니의 눈가엔 항상 빗물에 가려진 뜨거움이 흘렀다.

남의 땅이 되어버린 안터 논배미

비에 젖은 할머니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빗물에 가려 보이지 않던 뜨거움은

할머니의 두 뺨을 타고 내려 하나의 비수로 내 가슴에 박힌다.

비잉-

다시금 우산을 힘껏 돌려 본다 더 이상 빗방울은 튀지 않는다.

서울의 거리 한복판

무지개조차 뜨지 않은 흐린 하늘에서 할머니 내음이 난다.

김주환(문과대·국문2)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