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대신문> 문화상 당선작 - 소설부문

▲ © 이현자 기자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나는 언니가 이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참고 있던 것이 그때 팍 깨지는 것을 느꼈다. 묵묵히 다물어져 있던 내 입이 쉴새 없이 움직였다.
“어쩔 수 없었다구요? 당신이 그렇게 휙 떠나지만 않았어도 어머니가 그리 쉽게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고작 한다는 말이 어쩔 수 없었다 에요?”
“나는 그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단다.”
“도대체 뭘, 뭘 견딜 수 없었다는 거에요? 고작 어머니가 부리는 심술이 힘들어서요? 아니면 집의 가난이 힘들어서요? 당신이 도대체 뭐 그렇게 잘 났다고 견딜 수 없었다는 겁니까? 말해봐요! 도대체 뭐가요!”
“너!”
순간 모든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분명 언니가 잘 못 말한 거라고.
“나라고 말한 건가요? 나 때문에 견딜 수 없었어요?”
언니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바로 너 때문이었어! 난 도저히 널 더 볼 수 없었어! 네가 너무 부러워서! 네가 되고 싶어서 난 도저히 견딜 수 없었어!”
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언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에요!”
“네 얼굴, 네 몸,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게 다 부러웠어. 날 봐 얼굴도 까맣고 얼굴도 예쁘지도 않아. 키는 멀대 같이 커서 다른 사내들이 다가오면 슬며시 다리를 구부려야해. 가만히 있어도 예쁜 너하고 난 너무 달라. 그래서 쉴새 없이 웃고 떠들고 관심을 끌어야 했어. 안 그러면 그 사람들의 관심마저 너한테 빼앗길 까봐! 넌 그렇게 예쁘고 자상한 어머니가 있었잖아. 그런데 난 뭐야. 나한텐 아무것도 없었어. 그 기분 알아? 친아버지가 몸을 서슴없이 더듬는 그 기분 말이야! 내 나약하고 나약하신 아버지, 평생 내 어머니만 사랑하다가 돌아가신 가엾은 분! 머리로는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소름끼치는 기분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어. 그런데 넌? 너무 작고 귀여워서 아버지가 함부로 건들지도 못했어. 만지면 날아갈까봐 아버지가 너는 그저 옆에 두고 보기만 하셨어. 너무도 소중하게 말이야. 나는 어떻게 생각했냐고? 우습게도 아버지 말에 수긍했어. 왜냐하면 넌 나도 반할 만큼 예뻤으니까. 꼭 안아주고 싶어도 네가 날 싫어할까봐 다가가지도 못했어. 어머니한테 머리를 빗어달라고 하고 싶어도 어머니가 날 싫어해서 말도 꺼내지 못했어. 그래서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달라고 웃고 떠들었는데 어머니도, 너도 날 봐주지 않았잖아,,,, 이 집을 왜 떠났냐고? 무서워서 그랬어,,,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 마저 다 빼앗길까봐,,, 그래서 먼저 버린거야,, 먼저 버리면 적어도 상처는 안 받잖아,,,, 그러면 적어도 좋은 추억은 안고 가겠지,,,, 그런데,, 그런데,, 이제 나한테 남은 건 하나도 없어,,,, ”
  언니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 앞에서 너무나도 서럽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언젠가 결심했었다. 언니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에게 모든 것을 다 얘기하고 복수를 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나는, 언니는, 우리는 왜 이렇게 엇갈렸었던 것일까. 어느샌가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랑한다는 말. 그 한마디만 서로가 했어도 우리가 이리도 엇갈렸을까? 어머니도, 나도, 언니도, 그리고 아버지도 우리는 서로 너무나도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각자 외로웠지만 어떻게 해야 빈 마음을 채울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에 그 주위를 맴돌면서 상처를 주는 것으로 서로의 존재를 각인시킬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밤새도록 서로를 붙잡고 울었다.     
  그 다음날 언니는 떠났다. 나는 차마 언니를 붙잡지 못했고, 언니도 차마 함께 있자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언니는 나에게 자신의 딸을 맡기고 어머니의 고향으로 떠났다. 나는 그때 알 것 같았다. 언니는 어머니의 고향에서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끝마치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도, 어머니가 죽기 전에도 죽음이 다가오는 사람들은 그 특유의 무엇인가가 있었다. 언니는 나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도, 어머니의 죽음도 모두 겪은 나에게 언니인 자신의 죽음까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언니를 아무 말 없이 보내주었다. 어쩌면 나와 언니가 서로에게 끌리고 서로의 사랑을 갈구 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에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각자 가졌었기 때문에 서로를 증오하거나 사랑하고 있던 것이다. 증오와 사랑은 한 형제와도 같은 것. 왜냐하면 두 가지 모두 항상 상대방을 자신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언니는 증오와 사랑의 경계 어디에 있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는 항상 그녀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을 바람이 청명하게 불어오고 햇살은 그 어느 때보다 쨍쨍 내리비추었다. 풍경소리가 서늘하게 들려오고, 방 안에서 아이의 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야 너에게는 증오 대신 사랑을, 미움 대신 기쁨을, 무관심 대신 표현을 가르쳐 줄게. 너만큼은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서 진실 되게 말하려므나.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항상 후회 없도록 진실 되게 말하려므나 오직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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