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강좌를 수강하는 것은 그에게 너무 어렵다. 강의실 가기도 어렵고, 들어간다 해도 쓸 수 있는 책상이 없는 곳이 많다 © 유현제 기자
‘지이잉’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여느 동아리방(아래 동방)같은 학생회관 1층의 가날지기 동방의 풍경이 펼쳐졌다. 두 대의 컴퓨터와 여러 개의 의자, 테이블, 소파, 그리고 동아리 구성원들의 풍경. 하지만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의자 대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이병호(정치대ㆍ행정3) 군이다.

▲이동할 때 가날지기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 유현제 기자

 

▲조그만 둔턱을 후배의 도움으로 지나가는 이병호 군 © 유현제 기자
기자가 동방을 방문했을 때 이병호 군은 열심히 e-learning을 듣고 있었다. 필기하던 볼펜을 놓으며 그가 말했다. “학내에선 이동이 불편해서 e-learning을 많이 들어요.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들을 수 있잖아요. 이번 학기에는 3과목을 e-learning으로 듣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김선민(법과대ㆍ법2 )군도 거든다. “병호형은 웬만한 e-learning은 모두 들었어요. 한마디로 다 접수했다고나 할까요?” 이병호 군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지난 학기에는 일주일에 네 번 학교에 나왔는데 이번 학기에는 이상하게 두 번만 나오게 되었어요. e-learning을 세 개나 들어서 그런가 봐요.” 그리고 말을 이어나간다. “내일은 원래 수업이 없는데, 여자 후배들 사탕 챙겨주러 나올 거에요. 화이트데이잖아요. 하하.”

▲언덕진 길은 그에겐 거대한 벽이다 © 유현제 기자
그는 학교생활의 대부분을 동방에서 보낸다. 공강 시간에도 동방에서 보내느냐는 질문에 그는 “시간표를 짤 때, 되도록 연강으로 짜요. 이동을 최대한 적게 하려고요. 이동이 많으면 너무 피곤해요. 공강은 1주일에 몇 시간 안 되도록 짰죠.” 그리고 동방 한 구석의 음식점 전단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덧붙였다. “저는 밥도 동방으로 시켜 먹습니다. 학생식당에서 먹고 싶어도 식판을 잡고 이동하기가 힘들어요. 작년에는 지하식당에서 밥을 먹을 일이 있었는데, 친구 2명이 저를 양쪽에서 잡고 식당으로 내려가는 곤욕을 치러야만 했죠. 친구들도 힘들었을 거에요.”

 

그는 이번학기에 법대 교양과목을 들으려 했었다. 하지만 법대 2층으로 강의실이 바뀌는 바람에 수강을 취소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법대 2층은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가 없으니까요. 강의실만이라도 저 같은 학우들을 위해 배려를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목소리에서 억눌린 감정이 함께 묻어 나온다. “1학년 때 멋도 모르고 이과대와 사범대 수업을 들었어요. 얼마나 멀고 얼마나 높습니까. 정말 힘들게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낮은 지대 건물에서만 강의를 듣는다는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주차된 차 사이를 통과하는 이병호 군 © 유현제 기자
모든 학우들을 위한 지성의 공간인 도서관 역시 그에게는 높은 장벽이다. 도서관 열람실로 올라가는 길은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언어교육원 앞에서 그가 앉은 휠체어를 밀고 올라간 김선민 군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이야, 거 참 힘드네! 병호형은 평소엔 도서관에 잘 안와요! 형은 별로 공부를 안 하거든요. 농담인 것 아시죠? 하하.” 이병호 군이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아냐, 나 공부 열심히 해~! 제가 도서관에 자주 안 오는 건 불편해서 그래요. 혼자 어떻게 여길 올라오겠습니까.”

▲상허관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지하주차장을 통해야 한다. 그가 다닐 길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 유현제 기자
강의실 책상은 의무적으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너비와 높이를 구비해야 하고, 새로 지어진 건물들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는 등 장애학우들을 위한 시설 개선이 많은 요즘이다. “하지만 개선되었다고는 해도 장애학우들을 위한 배려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이동이 용이하지 못한 법대나 사범대 같은 건물들, 한정된 수업 선택, 도서관에서의 공부조차 힘든 환경…. 우리는 구성원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병호 군은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는 힘찬 손놀림으로 바퀴를 돌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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