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생물시간에 배웠을 ‘역치’란 단어가 있다. 역치는 생물체가 자극에 대해 반응을 나타낼 수 있는 최소한의 자극의 값이다. 역치값 이상의 자극을 가하면 사람은 감각기관을 통해 이 자극에 반응을 보인다.

‘실무율’이란 말도 있다. 역치값 이상의 자극이라면 그 자극의 크기가 어떠하든 간에 반응하는 정도는 같다는 말이다. 주로 근섬유나 신경섬유 등의 단일 세포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지난 9월 초, 국가정보원(아래 국정원)이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통한 휴대폰 도청의 합법감청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휴대전화ㆍ인터넷 전화에 대한 도청은 금지였는데, 이 법이 개정된다면 이동통신회사들은 감청설비 시설을 의무적으로 갖추고 법원의 영장이 발부될 시 개인의 휴대전화를 도청할 수 있게 된다.

국정원은 효율적인 범죄 수사를 위해 도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도청은 우리들의 사생활을 감시하여 국민의 ‘목소리’를 막겠다는 의도이며, 궁극적으로는 이명박 정부의 권력독점이 가능하게 한다. 이는 민주화를 열망한 우리대학 10ㆍ28항쟁의 의의를 무색하게 만드는 과거 독재정권으로의 회귀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담담하기만 하다. 우리의 감각은 우리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문제들에 대해 무심하기만 하다. 이미 자극적인 일련의 사태들을 많이 겪어왔기 때문인가.

지난 촛불집회는 색소를 탄 물대포를 위시한 전ㆍ의경들의 무분별한 폭력진압으로 얼룩졌다. 또한 촛불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무대뽀’적인 연행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연행한 시민들에 대해서도 과잉 수사를 자행해왔다. 더욱이 경찰은 수사과정에서 여성들의 속옷을 벗겨내기도 했다.

오늘의 이 도청 문제는 우리 개개인의 역치값을 넘어서버린 단순한 한 자극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위협적인 문제는 앞으로도 산적해 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의료 민영화ㆍ공공기관의 민영화로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꾸리는 일 조차 위협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에 우리는 지금처럼 대응할 것인가.

앞서 설명했던 실무율은 단일 세포체에 해당하는 말이다. 단일 세포체들이 뭉쳐 만들어진 근육이나 신경은 단일 세포체와 달리 다양한 자극에 반응할 수 있다. 근육이나 신경을 구성하는 각각 단일 세포체들의 역치값이 달라서 자극의 크기에 따라 반응할 수 있는 세포체들의 양이 다르며, 자극의 크기가 커질수록 반응하는 세포수도 증가하므로 반응의 크기 역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극에 대해 우리 개개인이 표현할 수 있는 반응은 한계가 있다. 강한 자극이 우리를 다치게 만들더라도 우리가 보일 수 있는 행동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이면 다르다. 우리는 모여서, 자극에 더욱 강한 행동을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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