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속을 걷고 있어(1)

그건 분명 슈퍼마켓의 이름이었다. 간판에도 분명히 적혀있지 않던가, Across the universe 슈퍼마켓이라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저건 분명히 무언가가 잘못된 거야. 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손가락으로 양 눈을 세차게 문질렀다. 손의 소금기 때문에 눈이 빨개지고 눈 주위가 뜨거워질 때까지 문지르고 나서 다시 한번 위를 쳐다봤다. 간판은 여전히 하얀색 바탕에 파란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고딕체 글씨로 이라고 쓰여 있었다.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그 간판은 요즘의 화려한 술집이나 카페의 간판들과는 달랐다. 그것은 동네의 <맛나슈퍼>라던가 <하나로 농축산물 공판장>정도의 이름을 달았음직한, 옆에는 담배마크가 그려져 있고, 가계의 샷시문 입구에는 누런색 쟁반모양의 뻥튀기를 잔뜩 쌓아놓고 파는, 그런 형태의 구멍가게에나 붙어있을 간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게의 이름은 달랐다. 왠만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따위 이름을 슈퍼마켓의 상호로 쓸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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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가계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 이유는 그 당시 내가 Beatles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비틀즈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비틀즈는 이미 오래전에 해산해버린 그룹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다. 죽은 것들은 살아있는 것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다. 그 악명 높은 히틀러조차도 죽음 이후로는 오랜 침묵마냥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지 않던가. 그리하여 죽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상한 향수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어쨌든 이 기묘한 간판을 단 슈퍼마켓 앞에서 나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치지도 못한 체 주저하고 있었다. 무엇을 주저하고 있었던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가계를 향해 한 발짝 앞으로 내딛었다. 가계의 닫혀진 샷시문 사이로 S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라도 새어나오길 두렵고도 기대되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계의 입구와 나와의 거리는 한발자국만큼 가까워졌지만 아직까지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가계의 문을 연다. 끼이익--오래된 샷시문의 거친 소리가 마치 배경음악인 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가계 안에 울려 퍼진다. 나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어깨를 바짝 움추렸다.

카운터에는 50대 초반의 한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세탁기에 넣고 돌린 뒤 제대로 탈수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세탁기 안에서 말라버린 걸레처럼 쭈글쭈글하고 뻣뻣했다. 시장에서 사온 듯한 잘못된 알파벳이 박혀있는 요란한 바둑판무늬의 나일론 셔츠, 벨트를 하고 배 윗부분까지 올려 입은 철지난 양복바지, 가운데 머리가 자그마한 연못마냥 텅 비어있고 그 주위를 흰색과 검은 색 머리카락들이 부끄럽게 감싸고 있는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중년의 아저씨, 연탄창고의 때 묻은 콘크리트 벽에 난 쥐구멍 같은 구멍가게인생-나는 그 비굴해 보이는 구멍가게의 주인으로부터 그 어떠한 Beatles의 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다. 그가 Beatles가 무엇인지 들어보기나 했을까?  

나는 실망한 기분으로 아저씨에게서 눈을 떼고 가계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계는 모든 2평 반짜리 구멍가계가 그러하듯이 지루하리만큼 평범한 일상의 꼴을 하고 있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놓은 구석구석 먼지가 촘촘히 낀 4층짜리 진열장 1층에는 촌스러운 진노랑색의 롯데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 민트 삼총사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그 옆에는 350원짜리 합성섬유 맛의 레몬맛 실비아가 몇 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마분지로 만들어진 케이스 안에서 뒹굴고 있었고, 주위에는 딸기맛, 사과맛, 포도맛 아이셔가 색깔과 형태가 마구 뒤섞인 상태로 역시 같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색색깔의 땅콩모양 초컬릿이 플라스틱 케이스안에 들어있는 싸구려 불량식품들, 500원짜리 조그마한 불량식품 초컬릿들-그 위에 가지런히 쌓여져있는 먼지 때문인지 몰라도 그것들은 왠지 학교 앞 문방구에서 보는 플라스틱 팽이라던가 크레파스들처럼 먹으면 안 되는 물건들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열대의 2층에는 새우깡과 칸초와 양파깡과 꽃게랑이 마지못해 있는다는 듯이 힘없이 올려져 있었다. 꽃게랑이 아직도 나오나보군, 설마 유효기간이 한 5년쯤 지난 과자는 아닐까? 나는 마치 위험한 폭탄의 뇌관이라도 자르는 사람처럼 손끝으로 과자를 잡아 살짝 뒤집어보았다. 신기하게도 아직 유효기간이 3개월 정도 남아있다.

혹시 과자회사들이 과자를 가게에 보낼 때 가게의 인테리어를 보고 골라서 보내는 걸까? 왜 항상 후줄근한 가게에는 오래되고 촌스러운 과자들만 들어오는 걸까? 요즘 가격도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과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은 항상 미스테리였다. 정말 바닥은 기분 좋게 미끈거리고 어린아이를 태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대형 카트가 돌아다니는 공룡같은 수퍼마켓에는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이는 과자들만 들어오고 구멍가게에는 구멍가게에 맞는 궁상맞은 과자들이 들어오는 걸까?  

무기력한 과자들 위의 진열장 3층에는 무미건조한 라면들이 쌓여있었다. 신라면, 안성탕면, 너구리, 농심라면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라면도 몇 봉지 있었다. 구멍가게와 과자의 상관관계에 관한 룰은 라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가게의 양쪽 모서리에 붙은 벽장에는 몇 가지 생활용품들이 늘어져 있다. 하얀 종이로 말려져 있는 국수뭉치, 촌스러운 분홍과 녹색의 싸구려 플라스틱 바구니들, 녹색의 액체로 가득 채워져 있는 커다란 리도샴푸, 다시다, 박하사탕 같은 것들이 조물조물 들어있는 나프탈렌 뭉치... 그렇게 구멍가게에는 구멍가게에 맞는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다. 점심으로 하얀 국수를 삶던 영태엄마가 국수가 모자란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몸빼바지 차림으로 급하게 달려오는 곳, 나른한 봄날 오래간만에 골목길로 산책을 나와 잇몸으로 새하얀 캔디바를 오물거리고 동네 아이들이 엄마아빠한테 받은 용돈으로 한걸음에 달려와 브라보콘을 사는 곳이 구멍가게란 곳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구멍가게의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물건을 파는 곳’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이 그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뿐, 구멍가게의 이름이 Across The Universe이든, 그 안에서 비틀즈의 ‘도와줘요(Help!)’가 흘러나오든, 나훈아의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가 나오든 그들에게 있어선 그리 대수로울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충분히 짐작하겠지만, 내가 무언가를 사려고 그곳에 온 것은 아니다. 그저 그 가게에 걸린 이름만 보고 비틀즈와의 상관관계를 내 맘대로 연상하고 그곳에 들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애초부터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게다가 이 가게 안의 그 어떠한 물건도 ‘아, 사고 싶다’라는 구매의욕을 당길만한 것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초라한 4층짜리 선반을 앞뒤 위아래 양옆으로 꼼꼼하게 살펴보았고 그 위에  하늘만큼의 의문을 쏟아 부었고 우주만큼의 의미를 두었다. 그랬을지언정, 물리적인 시간은 아마도 채 5분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구멍가게의 아저씨는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나도 나랑은 상관없다’라는 표정으로 내가 꽃게랑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집어 올려 살펴 보던 말던, 이상한 이름의 라면을 신기하게 관찰하던 말던,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은 끝나버렸지만 나는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애초에 가게의 이름을 보고 무언가에 끌려온 듯이 왔다면 무언가를 얻어가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나는 비장한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꼼꼼히 가게 안을 둘러봤지만 여전히....내가 찾는 ‘그 무언가’는 아무데에도 없었다.

나는 실망한 심정으로 진열대의 2층에 덩그라니 놓여져 있던 홈런볼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가 주머니 속의 500원과 홈런볼을 동시에 내밀었다. 구멍가게의 아저씨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들고 있던 신문을 바닥에 내려놓고 500원을 받고 홈런볼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밀어 내 앞으로 내놓았다.

그렇게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거래는 끝났다.  

나는 길을 가다가 알 수 없는 어떠한 것에 끌려 모르는 가게에 들어왔다가 그곳에서 주머니속의 500원과 홈런볼을 교환했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물건을 사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뭔가 가슴 한쪽이 뻥 뚤린 듯한 그런 아쉬움을 남겨주는 구매행위였다. 왜 그런 걸까? 내가 홈런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건 사실이다... 난 홈런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가게에서 홈런볼이라도 사서 나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더 커다란 허무함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한손에 홈런볼을 쥐고 힘없이 알루미늄 셔터문을 밀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세계와 Across The Universe를 가르는 셔터문이다. 나는 마치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의 해치를 열고 산소통도 없이 황량한 바다로 나가는 듯한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힘없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세계로 한 발짝 내딛었을때, 구멍가게 아저씨의 쉰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링고, 들어와!”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샌가 노란 털의 자그마한 진도개가 내 발 밑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 가게 안에 계속 있었던 모양인데 왜 나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하지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물론 개가 내 발 밑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순간 내 가슴은 방망이질치기 시작했다. 내 발목을 맴돌고 있는 자그마한 강아지. 나는 내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 지도 까먹은 채 그것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대신 강아지를 집어 들었다.

나의 목소리를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강아지가 아저씨 개에요?”

“내 개 맞는데”

“아....아저씨가 이름 지어주셨어요?”

“내가 지어주긴 했다만, 그걸 왜 물어보나 학생?”

“아....아저씨, 혹시 링고는 링고스타의 링고인가요?”

아저씨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다. 

“학생이....... 비틀즈를 아나?”

학생이...비틀즈를 아나?-그것은 마치 아저씨들이 ‘우리 시절에는 이랬는데..니들은 그때 우리가 그랬던 걸 알기나 하겠니’ 하는 듯한, 그런 의심이 가득 담겨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네! 알아요!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그룹이에요!”

“어허허, 요즘 사람들이 비틀즈를 다 아나?”

“그럼요! 제가 비틀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어허, 그래? 내가 젊었을 땐 비틀즈가 인기가 아주 좋았지”

아저씨는 계산대 옆에 놓아두었던 뿔테안경을 쓰고는 강아지와 홈런볼을 들고 있는 나를 살펴보듯 바라보았다.

“아저씨, 그럼 혹시 가게 이름도 아저씨가 지으신 거에요?”

“그랬지, 가게를 한지 거의 20년이 다 되었던가..가게 이름이 좀 특이하지? 근데 사람들은 가게의 이름 따위는 신경 안 써”

“아니에요, 아저씨, 전 이 노래 정말로 좋아해요”

“그래? 오래간만이군... 딱정벌레들이라....”

아저씨는 마치 다락방에서 20여년 전의 사진을 발견한 듯한 향수어린 시선으로 가계를 한번 둘러보았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젊을 시절을 다시 회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링고를 계산대 위에 펼쳐져있는 신문지 위에 살며시 내려놓고 아저씨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그렇게 가게를 빠져 나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사막속의 오아시스에 갔다 온 듯한 몽롱한 기분이었다. 나는 홈런볼을 소중히 가슴에 안고 몇 걸음 걸어가다 조심스레 다시 뒤돌아보았다. 설마 그건 신기루가 아니었을까? 뒤돌아보면 없는, 4차원의 세상이 아니었던 것일까?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살며시 뒤돌아보았지만  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내 가슴에는 여전히  에서 사온 500원짜리 홈런볼이 들려있었다.

Across the universe

Words are flowing out like endless rain into a paper cup,

They slither while they pass, they slip away across the universe

Pools of sorrow, waves of joy are drifting through my open mind,

Possessing and caressing me.

Jai guru deva om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Images of broken light which dance before me like a million eyes,

That call me on and on across the universe,

Thoughts meander like a restless wind inside a letter box they

Tumble blindly as they make their way

Across the universe

Jai guru deva om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Sounds of laughter shades of earth are ringing

Through my open views inviting and inciting me

Limitless undying love which shines around me like a

million suns, it calls me on and on

Across the universe

Jai guru deva om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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