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성 래 - 외국어대 사학과(과학사)·교수

우리가 쓰는 1만원 짜리 지폐에는 ‘물시계’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거기 그려져 있는 초상은 세종 임금이다. 한국 사람 누구에게나 아주 친숙한 조선 왕조 네번째 임금 세종(世宗 1397-1450)은 21살 때인 1418년 아버지 태종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어 32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이 물시계는 그가 이룩한 수많은 업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물시계를 만든 사람은 동래(東萊)의 노비(종) 출신인 장영실이다. 말하자면 우리 돈 최고액권에 물시계가 그려져 있는 것만으로도 이 물시계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 유산인가를 알 수 있다. 장영실(蔣英實 1380?-1450?)은 이 자격루(自擊漏)라는 물시계로 그 이름을 한국 역사에 영원히 남기게 되었다.

남문현 교수의 이 책 「장영실과 자격루」는 바로 이 사람과 그의 업적을 상세하게 연구해 소개한 중요한 책이다. 원래 우리 역사는 과학과 기술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전통을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과학기술이란 서양에서 17세기 이후 급격하게 발달해 지금은 세계를 움직이게 된 것이지, 그 전 까지는 인류 역사 어디에서도 그리 중시된 일이 없다고도 할만하다. 당연히 서양의 영향 아래 과학기술을 중히 여기기 시작한 20세기까지 우리 선조들은 장영실 같은 인물이나, 그가 만든 자격루 따위에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물론 장영실과 그의 자격루는 옛날 책에도 간단하게는 기록되어 있고 일제 시기에는 조금 더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과학의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나오면서 비로소 장영실과 자격루는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 그런 관심을 일으키는데 가장 크게 노력한 사람은 과학사 학자 전상운(全相運)이다. 그후 다른 과학사 학자들이 같은 목소리를 높였고, 그 덕택에 지금 덕수궁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자격루는 1985년 국보(國寶) 228호로 까지 지정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이 자꾸 유명해지자 <장영실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금 남아 있는 이 국보는 장영실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다. 장영실의 것을 흉내내어 만들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지금의 국보 228호는 그 보다 1세기 뒤에 새로 만들었던 자격루가 다른 장치는 모두 사라진 채 물통 5개만 남아 있는 것이다. 유감스럽게 장영실의 자격루는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또 옛날의 기록은 정밀한 과학기술적 내용을 자료로 남기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종 때 장영실의 자격루 모양과 그 작동 원리를 지금 우리는 잘 알 수가 없다.

남교수의 이 책 「장영실과 자격루」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한 답을 구하여 제시하고 있다. 아직까지 아무도 자격루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었던 것을 남교수는 1984년부터 연구에 매달려 1998년 이전에 어느 정도 완벽한 작동 모델을 개발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유일한 자격루 모델이 나온 셈이다.

이 책의 부록(pp. 163-194)에는 바로 그 남교수의 자격루 연구 과정 전부가 소개되고 있다. 상당히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많이 담고 있어서 흠잡힐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어느 의미에서는 한 학자의 연구 뒷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할 것 같다. 이 책은 그렇게 유명하면서도 출생과 사망 연도 조차 분명하지 않은 장영실의 일생을 자세하게 연구해 본 연구이면서, 특히 그가 만든 대표적 업적인 자격루의 작동 원리를 재발견하는 데 그 중요성이 있다. 또 관련 있는 사진들이 아주 많이 들어 있는 것도 이 책의 강점이다. 너무 장영실과 자격루의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느라 조선 초기의 천문학 일반에 대한 내용이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할 수도 있으나, 이 방면에 전혀 문외한인 독자들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라 하겠다.

남문현 지음/서울대학교출판부/2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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