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뒤에 가려진 보조출연자의 말 못할 고달픔

엑스트라는 ‘여분’, ‘나머지’란 뜻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보조출연자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엑스트라라는 의미에서도 볼 수 있듯 보조출연자는 항상 나머지이고 뒷전이다. 함께 일하러 가던 아저씨는 “내가 TV에 나왔는데 부모님도 모른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잠시 머물러가는 존재, 그러나 방송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금 같은 존재, 엑스트라를 직접 체험해 보았다.


모두가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금요일 늦은 11시, 학교에서 KBS 제 2별관으로 향했다. 다음날 문경에서 새벽부터 촬영이 있기 때문에 전날 자정에 모여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간다. 보조출연자들은 대하드라마에 나오는 병사 역을 맡게 됐다. 잠은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해결해야 했다. 제대로 된 잠을 잘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른 5시 눈을 떠보니 스태프, 보조출연자 모두 분장과 의상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보조출연자들은 수염을 붙이고 천 옷과 갑옷을 입어 어느새 한 명의 병사로 다시 태어났다. 무기를 받고 촬영장에 도착해 정렬하자 각 반장들이 우리가 해야 할 행동들을 지시했다. 옆에 있던 한 청년은 “젊은 반장이 그보다 훨씬 나이를 많이 드신 어른 분께 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속삭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가 만난 반장은 친절한 사람이었다. ‘액션!’이 끝나고 ‘컷!’이 나자 잘했다고 격려를 해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TV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설렘이 앞섰으니 말이다. 그러나 해가 남중고도로 올라갈수록 더워지기 시작했다. 여름의 막바지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라 버틸 만 했지 여름에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그래”라며 옆에 있던 보조출연자가 설명해줬다. 촬영장은 산 쪽에 있었으나 나무가 없었고 있는 그늘이라고 해봐야 성벽 뒤로 난 그늘이 전부였다. 이른 11시부터는 땀이 줄줄 나기 시작했으나 언제 촬영이 시작될지 몰라 편히 쉴 수도 없었다. 같은 신에서 촬영이 똑같이 반복돼 우리는 같은 행동을 계속해야 했다. 이따금씩 쉬는 시간이 주어질 때면 모두 잠을 청했다.

점심시간이 돼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밥 먹을 장소도 마땅치 않아 바닥에 앉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밥을 직접 먹을 수 있으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아예 밥을 주지 않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인쇄소에 있다가 보조출연자로 일하게 된 김일용 씨는 “촬영장마다 대우가 천차만별”이라고 밀했다. 또 “아예 식사를 제공해주지 않는 곳도 있다”며 “그럴 경우에는 편의점에서 한 끼를 해결한다”고 덧붙였다.

똑같은 일정을 저녁까지 소화하자 많은 보조출연자들의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보통 촬영을 끝마치면 늦은 11시 쯤, 서울로 돌아오면 새벽녘이 되기 일쑤다. 야간 촬영이 있는 경우에는 훨씬 늦어질 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일을 해야 세액을 포함해 7만 1000원 정도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푹 자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는 보조출연자들은 매번 TV에 나오지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스쳐가는 장면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한번쯤은 우리가 매번 보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고생하는 보조출연자들에게 시선을 돌려보는 게 어떨까. 잊지 말자. 그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로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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