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이 된 날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을 마음에 품었다. 그땐 사실 왕관쯤이야 했었다. 그러나 내 어깨는 날로 무거워져 지금은 땅에 달라 붙어있는 상태다. 특히 지난 3주는 더욱 그랬다. 당시 내 어깨는 땅을 뚫어 지구의 가장 안쪽에 존재한다는 내핵까지 다녀왔다.

3주 전 건대신문 발행이 ‘금지’됐다. 마감이 늦어 발행이 미뤄진 적은 있었지만 금지당한 건 처음이었다. 원인은 1면 탑 기사였다.(1251호 ‘인상률과 침묵사이’ 기사 참고) 이미 학생들이 등록금을 90% 이상 납부한 상황에서 등록금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건 학내 분란을 조장하는 선동이라는 이유였다.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르게 해석된 것이다. 우린 그저 학우들에게 묻고 답한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 때 처음 편집국장이라는 직함에서의 편집은 ‘최종편집권’이 아님을 알게 됐다. 인쇄업체는 주간교수님의 허락이 있기 전까지 인쇄를 해줄 수 없다는 말을 전했다. 1면 기사를 바꾸지 않으면 신문은 발행될 수 없었다. 결국 발행 예정이었던 월요일까지도 신문 배포대는 비어있어야 했다.

그리고 일주일, 발행이 막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2주간의 땀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신문을 일반 용지에 인쇄하여 게시판에 게재해 학우들에게 보여줬다.

생각보다 파장은 컸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대상을 취재만 하다가 우리가 그 대상이 된 것이다. 당시 우리의 행동에 많은 이들이 지지와 격려를 전했다. 여러 문의 전화도 받았다. 그러면서 다른 대학교의 신문사들도 편집권으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됐다. 민주화에 앞장섰고 또 이끌어낸 우리 대학생들은 여전히 많은 제재 속에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주간교수님과 협의가 됐고, 발행이 막혔던 신문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대화의 힘이었든, 많은 사람들의 격려의 힘이었든 1251호는 제자리인 배포대로 갈 수 있었다. 2년 만의 총학생회 당선 기사를 전하며 말이다.

기쁘긴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분명히 집고 넘어가자. <건대신문>은 학교 공식 언론이다. <건대신문> 기자들은 학교를 싫어하지 않는다. 단지 학교에 쓴소리를 해야만 할 때가 존재할 뿐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꺾이지 않는 애국의 붓을 품고 학내를 뛰어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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