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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창 박사의 발자취는 여전히 남아
이동찬 기자 | 승인 2011.05.10 00:04

민중병원과 우리대학의 설립자 유석창 박사가 서거한지 4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학교 곳곳에는 유 박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가장 먼저 도서관 앞에 있는 동상을 들 수 있다. 동상은 74년 5월 15일 동문들이 모금해 우리 학교의 설립자 유 박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래 새천년관 앞 쪽에 있었으나 새천년관이 지어지면서 지금의 상허기념도서관 앞으로 옮기게 됐다.

우리학교에는 다른 학교에는 볼 수 없는 설립자 묘소도 있다. 유 박사가 돌아가시자 그의 죽음을 애도한 사회 원로들은 다같이 모여 유례없는 사회장을 지냈다. 많은 분들이 유 박사가 학교에 애착을 갖고 학교발전을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런 만큼 캠퍼스에 잠드는 것이 옳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묘소는 캠퍼스가 잘 내려다보이는 지금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게 됐다고 한다. 또 많은 학우들이 ‘이곳은 실제 묘일까? 가짜 묘일까?’ 의문을 품곤 하는데 채현석 박물관장은 “가묘라는 건 헛된 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의미 있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등록문화재 제 53호 상허기념박물관에도 유석창 박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다. 현재 박물관 1층에는 유 박사의 유물이 보관돼 있고 학우들은 언제든지 이곳을 방문해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은 우리대학의 전신인 조선정치학관 건물이었으며 나중에 1977년 종로구 낙원동에 있던 건물을 현재 위치로 옮기기 전까지 많은 배움이 오갔던 곳이다. 그만큼 유서가 깊고 유 박사님과 우리대학의 역사를 깊이 간직한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이밖에도 그 당시 획기적으로 건축한 우리대학 언어교육원(구 중앙도서관) 건물도 있다. 당시 유 박사는 우리나라 건축의 대가 김중업 건축가에게 이 건물의 설계를 부탁했다. 유 박사 생전에 지어진 이곳은 내부에 계단이 없고 나선형으로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나선형 길이 상당히 넓어 차도 들어갈 만큼 컸다. 언어교육원이 준공되자마자 유 박사가 지프차를 타고 옥상까지 올라갔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또한 호수의 기상을 닮으라는 뜻에서 만든 인공호수 일감호, 상허 유석창 박사의 호를 딴 상허기념도서관, 상허연구관 등 우리 학교에는 아직도 유 박사의 뜻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아주 많다. 기억하자, 우리대학이 지금의 모습으로 오기까지의 그 역사가 우리 곁에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을.

이동찬 기자  fortress@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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