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섹시 아이콘 마릴린 먼로. 영화배우였던 그녀는 실제로도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 마틴이 가정을 버리고, 어머니 글레디스가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되면서 그녀는 보육원과 고아원을 오가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해 페미니스트 안드레아 드워킨은 “이 어린 여자아이에 비하면 소설에 등장하는 불우한 어린 주인공들은 상황이 꽤 좋았던 셈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어느 날, 그녀의 육군 홍보 사진이 잡지에 실리며 그녀는 한 순간 주목을 받아 모델로 발탁된다. 당시 귀여운 이미지의 모델이었던 그녀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배우가 되고 싶어 ‘20세기 폭스’사의 문을 수없이 두드렸다고 한다. 하지만 폭스사는 ‘너무 섹시미가 없다’는 이유로 그녀를 거절했다. 이에 굴하지 않았던 그녀는 턱과 코를 성형하고 갈색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뒤 다시 폭스사를 찾아가게 된다. 포기를 모르는 이 여인이 바로 폭스사를 먹여 살리는 1950년대의 인기여배우 ‘마릴린 먼로’다. 이후 그녀는 ‘러브 해피’, ‘아스팔트 정글’ 등 3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활발히 활동한다. 특히 1953년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에서 먼로는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펄럭이는 치마를 잡으며 허벅지를 드러내는 장면을 연기한다. 이 장면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그녀는 당대 최고의 섹시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영화배우로서의 대성공과는 달리 그녀의 사생활에는 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먼로는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 극작가 아서 밀러와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또한 그녀는 과학자 아인슈타인, 가수 프랭크 시네트라, 이브 몽탕,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 형제와의 스캔들도 터뜨렸다. 이러한 스캔들 때문인지 그녀의 일상은 문란한 사생활로 간주되어 FBI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

1962년 8월 5일, 먼로는 마치 비극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녀의 방 침대에서 자는 듯 죽은 채로 발견됐다. 가장 화려한 스타이면서 가장 불행한 여인이기도 했던 마릴린 먼로. 그녀의 영화 같은 이야기는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세기의 아이콘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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