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쯤이었던 것 같다. 기자의 둘밖에 없는 절친 중 한 명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방방 뛰던 그 때. 기자의 친구를 이토록 구름위로 둥둥 띄운 그 남자가 궁금하기도 하고, 축하차원에서 일단 한 번 셋이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 당일, 절친의 남친은 훈남인데다가 안경 쓴 그 모습이 0.1초 최다니엘을 연상시키기도 해 생각보다 좋은 인상이었다. 과연 친구가 방방 뛸 만도 했다.

짧게 인사를 마치고 때마침 저녁때라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점원이 물병과 컵을 가져다 주는데도 가만히 있는 그 남자. “그래, 이 정도야 내가 해주지^^”하고 물도 따라주고 숟가락도 가지런히 놓아주었다. 여기서부터 기자의 심기가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좋다고 눈에 하트를 뿅뿅 달고 있는 친구를 보고 쿨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고기가 나왔는데도 그 남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대단한 귀공자나셨네 그려~ 이 때 묘한 정적을 깨는 친구의 한마디. “기인아~ 고기는 너가 잘 굽잖아”

결국 기자는 열심히 고기까지 구워주며 절친의 남자를 모셨다. 다행히도 마지막 계산은 해주더라. 근데 사실 기자는 고기 굽는 데에 전념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니 거기서 돈까지 착취당했으면 정말 친구 남친이고 뭐고 강냉이를 털어버렸을 것이다. 알고 보니 나이 많은 2명의 누나들 아래 간신히 얻은 귀한 아들이란다. 하지만 자기 귀한 줄은 알면서 남 귀한 줄은 몰랐던 걸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철학으로 똘똘 뭉친 그 남자는 연애 중에도 이기적인 행동으로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하더니, 결국 이별통보도 이기적으로 해버리고 떠나가 버렸다.

물론 세상의 모든 귀한 막내아들을 비하하고 싶지는 않고 단지 고기 안 구워줬다고 꼬장을 부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정말 귀하게 자란 막내아드님의 못된 표본이라 하기에 딱 적합했다. 자신은 왕자이면서 사랑하는 여자는 공주가 아닌, 시녀로 대하다니! 앞으로 대왕대비마마같은 여자 한 번 만나서 호되게 정신차릴 날이 올 것이야. 자신은 왕자고 여자는 시녀로 대하는 남자? 자신은 방자여도 여자는 춘향이로 떠받드는 남자? 왕자와 사는 시녀가 될 것인지, 방자와 사는 춘향이가 될 것인지.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후자가 더 행복하다에 돈이라도 걸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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