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간의 중국역사문화탐방기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막상 잘 알지는 못하는 나라, 수많은 역사 유적과 거대한 땅덩어리의 나라. 그리고 우리와는 역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 바로 중국이다. <건대신문>에서는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5일간 우리대학 총학생회와 함께 중국역사문화탐방을 다녀왔다. 백두산부터 북경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사 유적과 함께 그들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중국에 가면 화장실을 조심하세요
“잠시 후 우리 비행기는 목적지인 심양에 도착하겠습니다.”
심양 공항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붉은 색의 한자들이 우리가 중국에 왔음을 알렸다. 다들 설레는 얼굴로 입국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서자 휑한 풍경이 보였다.
도시 곳곳에 새로운 건물 공사가 한창이던 심양을 지나 바로 통화시로 향했다. 요녕성 심양시에서 길림성 통화시까지는 버스로 두 시간 정도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데 보통 서너 시간이 걸리는 이곳에서 두 시간의 이동시간은 꽤 짧은 편이었다.
무엇보다 중국에 온 걸 실감하게 한 것은 바로 ‘화장실’이었다. “한 시간 이십분 정도 달리다 보면 휴게소가 나옵니다. 화장실이 상당히 깨끗한 편이구요, 그 이후로는 화장실이 잘 없으니 가실 분은 여기서 꼭 들렀다 가세요.” 이제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시내를 벗어나면 중국의 화장실은 여전히 우리나라보다 훨씬 열악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가이드는 앞으로의 일정을 소개하면서 항상 화장실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화장실 문화만큼은 중국이 한국보다 훨씬 개방적이라고 할 수 있죠.” 가이드의 말에는 웃고 넘겼지만 실제로 백두산 탐방 중 곳곳에는사람 키보다 문이 낮아 주위가 훤히 보이는 화장실이 많아서 탐방 참가자들을 당황케 했다.
중국에서의 첫 점심식사를 마치고 또다시 두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곳은 집안시의 국내성터. 옛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의 성벽이 남아있으나 주민들이 집을 지을 때 돌을 가져다 쓰는 바람에 지금은 그냥 야트막한 돌계단 정도 높이가 돼버렸다고 한다. 주위엔 아파트와 강가가 있고 길가에서 수박과 만두를 파는, 활기찬 시골마을처럼 보일 뿐이지만 이곳에는 옛 국내성의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거리 한 쪽에 앉아 놀이를 하고 있는 중국 아저씨들이 옛 시골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이호연 기자

저기 보이는 낮은 돌담이 옛 국내성 성벽이다 ⓒ이호연 기자

 

국내성터가 있는 동네 풍경 ⓒ이호연 기자


이후 이어진 관광은 고구려 때 그렸던 벽화를 실제로 볼 수 있는 5회분 5호묘, 광개토대왕릉비, 장군총이었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장군총은 생각보다 더 웅장한 모습이었고, 5회분 5호묘의 경우 직접 묘 안에 들어가 벽화를 구경할 수 있었다. 직접 사신도와 용 그림을 보는 것은 신기했지만, 계속 벽화가 흐려지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증명이라도 하듯 벽화 위로 줄줄 물이 흐르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거리에서는 이렇게 수박과 꼬치구이를 팔기도 했다 ⓒ이호연 기자

 

만두를 파는 수레 ⓒ이호연 기자

 

고구려 벽화 사진을 감상하고 있는 우리대학 학우들 ⓒ이호연 기자

 

5회분 5호묘의 모습 ⓒ이호연 기자

 

광개토대왕릉비를 밖에서 본 모습이다. ⓒ이호연 기자

북한 땅에 서서 천지를 보다
둘째날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백두산 천지였다. 아침 일찍 숙소에서 네 시간 반을 이동한 후에야 백두산 입구에 도착했다. 세 달 중 날씨가 화창한 날이 10일도 채 안 된다는 백두산이라지만, 가이드의 말처럼 “무슨 복을 받으셨는지” 이 날 하늘은 파랗고 햇볕은 쨍쨍했다. 우리가 간 곳은 백두산 4코스 중에 서쪽 계곡이라는 뜻을 가진 ‘서파’ 코스. ‘장백산’이라는 한자가 크게 쓰여진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버스를 타고 천지 아래에 도착할 수 있다. 그곳에서 1442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천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백두산 입구 앞에서 단체사진을 찰칵! '장백산'이라는 큰 글씨가 보인다. 장백산은 중국에서 백두산을 칭하는 말이다. ⓒ이호연 기자
백두산 관광표를 받고 즐거워하는 학우들 ⓒ이호연 기자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숲길을 잠깐 거쳐야 한다. ⓒ이호연 기자


쉬엄쉬엄 계단을 다 올라서자 천지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해발 고도가 높아서인지 바람이 꽤 불어서 올라오는 동안 흘렸던 땀이 금방 식을 정도였다.
발아래로 펼쳐진 천지의 모습은 카메라 렌즈 안에 한꺼번에 담기 어려울 만큼 컸다. 온도가 2~3도밖에 안돼 얼음장처럼 차다는 천지 물을 직접 만져볼 수는 없었지만, 멀리서도 보이는 깨끗한 푸른색이 얼마나 맑을지 짐작이 갔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조선’과 ‘중국’이라고 새겨진 비석이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북한과 중국 땅의 경계를 알려주는 비석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북한 땅’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함께 천지에 올랐던 강한묵(공대ㆍ기계공3) 학우는 “원래 우리 땅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까지 와서 천지를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고 감상을 전했다. ‘조선’이란 글자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길, 반으로 댕강 나뉘어져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새삼 크게 느끼며 발걸음을 돌렸다.

 

백두산 천지에 가는 버스 안에서 찍은 풍경. 산 위지만 마치 평원처럼 보인다. 백두산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다. 위로 올라갈 수록 키가 작아지는 나무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호연 기자

 

버스에서 내려서 본 천지 밑 풍경. 음료수와 간단한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다.  ⓒ이호연 기자

 

백두산에만 있는 특별한 가마. 몸이 불편한 분이나 노인 분들을 태워 천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이호연 기자

 

천지에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바라본 풍경  ⓒ이호연 기자

 

 

 

 

 

 

 

 

 

 

 

 

 

 

 

 

 

 

 

 

 

 

 

 

 

 

 

 

 

 

중국에서도 한국 성형외과는 빠지지 않는다셋째날은 요녕성 박물관과 서탑가를 관광하기 위해 다시 심양으로 향했다. 심양이 근방에서 제일 발달한 도시라는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시내는 번화하고 복잡했다. 다만 여전한 것은 달리는 차를 무시하고 요리조리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과 서로 비키라는 듯 유난히 빵빵거리는 차들이었다. 이런 모습은 발달된 도시의 풍경과 묘한 이질감을 들게 했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처럼 무척 크고 전시관도 많았던 요녕성 박물관을 짧게 견학한 뒤, ‘한국인 거리’라는 서탑가로 향했다. 한국인들이 모여 있는 거리답게 ‘서탑가’라는 커다란 알림판부터 반가운 한국어로 쓰여 있었다. 상의를 반쯤 걷어 올려 배를 드러낸 모습의,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림의 아저씨가 한글 간판 아래로 걸어가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거리 안쪽으로 들어서자 ‘롯데리아’나 ‘엔제리너스’ 같은 익숙한 이름들도 보였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평양관’, ‘모란관’ 같은 북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커다란 음식점들, 그리고 간판부터 커다란 위용을 자랑하는 룸살롱들이었다. 두어군데 한글로 ‘성형외과’라고 적혀있는 곳도 보였다. 물론 자그마한 떡집이나 정말 한국과 다름없는 마트 같은 곳도 있었지만, 거리 한가운데 룸살롱과 성형외과가 자리를 차지한 것을 보니 조금 씁쓸한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자금성은 ‘대륙 스타일’
북경 관광 첫 날. TV에서만 보던 만리장성에 도착했다. 앞뒤로 세 사람씩, 총 여섯 명이 바짝 붙어야 탈 수 있는 조그만 케이블카 안에서 덜컹덜컹 흔들리는 스릴을 즐기고 나니 산 위에 있는 성벽에 다다랐다. 실제로 본 만리장성은 정말 한없이 길었다. 탁 트인 시야 아래로 산 굽이굽이 보이는 곳마다 성벽이 끝없이 이어지는 모습에 참가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걱정했던 북경의 더위는 자금성에 도착한 뒤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산 위에 있어서 비교적 시원했던 만리장성과 달리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은 사방에서 열기가 달려드는 듯 더웠다. 교과서에서 자주 봤던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걸린 자금성의 모습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뚝뚝 흐르는 열기에 다들 양산을 꺼내 쓰기 바빴다. 특히 자금성 입구가 보이는 천안문 광장은 그 넓은 곳에 가로수 하나 보이지 않는 땡볕이라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열기가 더했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차가운 물은커녕 미지근한 물을 본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워낙 더워선지 드디어 얼음물을 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금성의 모든 건물은 벽을 붉은 색으로, 지붕은 황제를 상징하는 노란 색으로 칠했다고 한다. 가까이 다가가자 족히 몇 미터는 돼 보이는 벽의 높이에 그 크기가 점점 실감났다. 강한묵(공대ㆍ전기공2) 학우는 “실제로 보니 상상이상의 크기”라며 “마치 중국의 넓은 대륙을 자랑하는 것만 같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하루 종일 돌아도 다 볼 수 있을까 싶은 광대한 넓이에, 몇 개의 문을 지나도 계속 나오는 건물까지. 우리나라의 고궁과는 달리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맛은 덜하지만 정말 ‘중국식 규모’라는 말이 떠오르는 크기였다.

 

 

 

 

 

 

 

 

 

 

 

 

 

 

 

 

 

 

 

 

 

비슷한 듯 다른 나라, 중국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798예술거리였다. 798예술거리는 원래 무기 공장이 밀집된 공장지대였다고 한다. 이후 예술가들이 모이게 되면서 공장을 갤러리로 사용하는 등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명소가 됐다. 마치 우리나라의 홍대나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이 곳은 갤러리들이 몰려있어서인지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을 자랑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은 ‘중국역사문화탐방’이 새겨진 현수막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으며 일정을 마쳤다. 짧은 시간동안 빡빡하게 짜여진 일정이었지만 곳곳에서 색다른 중국의 문화를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생수 대신 콜라와 사이다를 더 많이 마신다거나, 유난히 커다란 간판들부터 배를 드러내고 다니는 남자들의 모습까지 버스 창문으로 거리만 바라봐도 흥미로운 점들이 가득했다. 또,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역사책 몇 페이지보다 직접 눈으로 본 장군총과 고구려 벽화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연보라(문과대ㆍ철학2) 학우는 “장거리 이동에 지치기도 하고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모습에 놀라기도 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며 “행복한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현아(공대ㆍ전기공2) 학우 역시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특히 백두산 천지를 본 일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내년에도 더 많은 학우들이 역사탐방을 통해 중국의 문화와 우리의 역사를 느끼고 체험해보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