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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으로 해방된 그녀들, 영화 <히스테리아>
이호연 기자 | 승인 2012.10.06 19:32

‘바이브레이터’라는 기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바이브레이터는 진동을 통해 성적 쾌감을 느끼도록 돕는 여성용 자위기구를 뜻한다. 성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 분위기가 된 요즘도 선뜻 말하기에 멋쩍어지는 단어지만, 영화 ‘히스테리아’는 과감하게도 바이브레이터를 영화 전면에 내세워 다루고 있다. 하지만 혹시라도 야한 장면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 바이브레이터의 탄생기를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 영화가 초점을 맞춘 것은 ‘여성’에 대한 문제다. 참정권은커녕 여성이 욕망을 당당히 드러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19세기 영국, 영화는 그 당시 흔히 말하는 ‘히스테리아’라는 병이 무엇인지 또한 이를 치료하기 위해 바이브레이터가 어떻게 발명됐는지를 유쾌하게 그려낸다. 지친 손을 얼음물로 식혀가며 엄숙하게 치료를 ‘집도’하는 모습을 보면 황당해 웃음이 나지만, ‘히스테리’가 그 당시 여성들에게 어떤 작용을 했는지를 안다면 한편으로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을 감출 수 없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유쾌하고 가볍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영화, ‘히스테리아’를 보며 지금 이 시대의 여성은 어떤 모습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좋을 것이다.

‘히스테리아’ 줄거리: 19세기 런던, 젊은 의사 모티머는 위생에 신경 쓰지 않는 치료 환경을 비판하다 해고당한 뒤 ‘히스테리아’를 전문으로 다루는 달림플의 병원에 취직하게 된다. 달림플의 정의에 따르면 히스테리아는 자궁의 지나친 활동이 원인이 되어 색정증과 우울증 등을 동반하는 여성 질병.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의사가 직접 여성의 성기를 마사지하는 치료법을 시행해야 한다. 히스테리아에 대해 배우던 중 모티머는 사회복지운동에 매진하는 달림플의 딸 샬롯을 만나고, 일반적인 여성과는 다르게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된다. 한편 모티머는 그의 손재주를 통해 히스테리아에 걸린 상류층 부인들 사이에 명성을 얻지만 열심히 일한 탓에 손에 마비가 오게 된다. 다시 한 번 해고 위기에 놓인 모티머는 우연히 친구가 발명한 기계를 보다 히스테리아 치료가 가능한 진동 기구를 발명한다. 실험 결과 진동 기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모티머는 히스테리아에 걸렸다는 이유로 정신병동에 갇힐 위기에 빠진 샬롯을 도운 뒤 청혼을 한다.

토론 참여자: 박철영(상경대ㆍ경제2), 이소민(정치대ㆍ정외2) 학우

영화의 소재가 조금 민망했을 수도 있는데요. 바이브레이터라는 소재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결합시킨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처음에는 여성용 자위기구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여성의 참정권이나 사회참여에 대한 문제를 더 부각시킨 내용이더라구요. 소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끌어낸 것 같아요. 자칫하면 굉장히 무거운 주제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낸 영화라서 재밌게 봤어요.

박: 바이브레이터라는 소재가 굉장히 참신했어요.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민망할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구요. 여성용 자위기구라는 소재가 낯 뜨거울 수도 있는데 선정적이기보다는 재밌게 진행되잖아요. 영화 속에서 바이브레이터는 여성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죠. 억압받던 그 시대의 여성 문제를 바이브레이터라는 소재와 잘 연결시켜 풀어낸 것 같아요.

모티머가 바이브레이터를 발명해내는 과정이 영화의 큰 줄거리인데요. 영화 속에서 바이브레이터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여성들이 히스테리아에 걸린 이유는 사실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욕구를 채우지 못해서죠. 그런데 바이브레이터가 발명되면서 여성이 스스로 ‘치료’를 할 수 있게 되잖아요. 문제의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닐지라도 여성이 혼자 욕구를 해소할 수 있도록 해줬다는 점에서 바이브레이터의 발명은 여성에게 일종의 독립심을 키워준 사건이 아니었을까요?

박: 영화 속 시대적 배경인 19세기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굉장히 억눌려있고, 성적인 욕구 를 풀 곳이 없었던 시대잖아요. 영화에서는 여성이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하면 무조건 히스테리아라고 몰고, 심하면 정신병동에 보내거나 자궁적출술과 같은 처방까지 내리죠. 그건 남성이 히스테리아라는 틀 속에 여성을 가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바이브레이터는 여성 억압의 틀을 깨는 해방구 역할을 한 거라고 봐요.

영화에서 모티머는 결국 샬롯에게 마음을 열고 청혼을 하죠. 그 계기는 무엇 때문이었으며 이러한 결말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박: 그 시대의 전형적인 남성인 샬롯의 아버지는 사회복지운동에 힘쓰는 딸을 무척 못마땅하게 여겨요. 그에 반해 모티머는 변화하는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물론 그도 처음에는 샬롯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그녀를 통해 여성에 관해 발전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돼요. 모티머가 샬롯에게 청혼하는 결말은 그가 샬롯의 가치관에 공감하게 됐다는 뜻이겠죠.

이: 샬롯과 모티머의 만남은 진보적인 사람들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모티머는 당시 사람들과 달리 위생 상태도 신경 쓰고 세균에 대한 경각심도 많은 진보적인 의사이지만 남성적인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죠. 그 고정관념을 샬롯이 깨 주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다면 현대의 여성들은 어떤가요? 지금의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여성들은 아직 남성에 비해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면이 분명히 남아있다고 봐요. 직장을 구할 때라든지, 혹은 명절 때만 봐도 어머니들이 음식 만들고 힘들게 일하시는 동안 아버지들은 누워서 쉬고 계시잖아요. 이런 문제가 계속 지적된다는 건 여성 문제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거죠.

이: 네, 하지만 많이 나아졌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아요. 영화에서 보듯 19세기에는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고, 샬롯처럼 많은 여성들이 운동을 일으켰죠. 덕분에 지금은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변화했구요.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바가 영화에서 잘 드러났다고 보시나요?

박: 네, 길거리에 나가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냥 모티머가 만나게 되는 일반적인 여성들의 생각을 보여준 것이 주제를 더 효과적으로 드러냈던 것 같아요. 영화 등급은 소재의 특성 때문인지 19세 미만 관람 불가였는데, 사실은 여성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만큼 등급을 낮췄어도 문제가 없었을 것 같아요.

이: 여성 문제가 좀 더 깊이 다뤄졌으면 좋았을 텐데 샬롯의 대사로만 언급되면서 빠르게 지나간 점은 아쉬웠지만, 유쾌하면서도 가볍게 주제를 풀어낸 영화라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솔직히 청소년 교육용으로 봐도 손색없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이호연 기자  pineblue@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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