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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용의자 X>
박지수 기자 | 승인 2012.11.04 20:44

‘사랑’이란 상상만 해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단어다. 톨스토이는 ‘사랑이란 자기희생이다. 이것은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이러한 사랑을 찾는 것은 점점 힘들어 보인다. “내가 이렇게 까지 했는데 넌 이것밖에 못해줘?!”라는 ‘give and take'식 사랑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용의자X>는 주인공의 헌신적인 사랑이야기로 더욱 주목할 만하다. 영화는 겉으로 보기에 살인사건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추리물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안에는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는 어둡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그동안 잊어버렸던 순수한 사랑에 대한 아련한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자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한 남자, 단지 그 여자의 행복만을 바란 한 남자의 순수한 마음은 오늘날 현대인의 물질적인 사랑에 일침을 가한다.

   
 
<용의자X>줄거리: 천재 수학교사 석고는 이웃집에 사는 화선을 남몰래 짝사랑한다. 어느 날, 석고는 화선이 우발적으로 전남편을 죽인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계획한다. 그런데 석고의 고등학교 동창인 민범이 사건 수사를 맡으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화선은 석고의 도움으로 거짓말탐지기까지 통과하지만, 민범은 심증만으로 끝까지 그들을 놓지 않는다. 이에 석고는 미리 계획한 일들을 하나씩 진행하기 시작한다.
 

 


※아래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토론참여자: 정하늘(공과대ㆍ항공우주3), 윤소윤(경영대ㆍ경영3) 학우

영화 ‘용의자X’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용의자X의 헌신’을 원작으로 만들어졌는데요, 영화로 각색하면서 제목과 내용이 조금 달라졌는데 어떻게 보셨나요?
윤소윤(윤): 저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 ‘용의자X의 헌신’을 먼저 봤는데요, 우리나라 영화 ‘용의자X’와는 내용전개에서 많은 차이를 느꼈어요. 원작에서는 수학교사인 주인공과 물리학자의 추리대결에 초점이 맞춰져요. 때문에 범죄가 일어난 시점부터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구요. 반면에 한국판 ‘용의자X'는 추리보다 석고와 화선의 감정변화에 비중을 많이 뒀어요. 원작에서는 석고의 감정변화가 잘 나타나있지 않지만 한국판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석고의 감정이 어떠했는지 느낄 수 있었죠. 석고의 헌신적인 사랑을 더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정하늘(정): 저는 원작은 못 봤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원작과 제목이 다른데 사실 처음에는 ‘왜 제목을 바꿨을까’하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영화 초반에는 ‘용의자X’라는 제목이 당연히 석고를 지목한 것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X는 정해지지 않은 미지수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잖아요. 실제로 화선과 화선의 조카, 석고 이렇게 세 명 모두가 범죄에 가담했는데, 원작의 제목은 석고에게만 초점이 가게 되죠. 그런 점에서 세 명 모두를 표현하기 위해 제목을 ‘용의자X’로 바꾸지 않았을까 싶어요.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인물이 있었나요?
정: 남들과는 다른 사랑을 보여줬던 석고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대신해 감옥에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석고의 사랑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는 사랑과는 많이 다르죠. 그렇다고 해서 석고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석고는 그만의 방식으로 화선을 사랑했고, 평범한 모습과는 다르지만 그것이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윤: 저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석고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화선이 석고의 편지를 읽은 직후, 연행 버스의 창문을 두드리며 미안하다고 소리칠 때 석고의 감정이 크게 드러나죠. 화선이 준 고양이 모양 편지를 꼭 쥐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모습에서 석고의 진실한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동안 석고는 화선에 대한 진심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었잖아요. 하지만 이 순간 처음으로 화선과 석고의 마음이 통하게 되죠. 그래서 관객들에게도 석고의 마음이 확실히 전달된 것이라 생각해요.

만약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화선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자신은 석고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점에서 영화의 내용에 공감하시나요?
정: 석고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만약 제가 석고라면 그런 행동은 하지 못할 것 같아요. 또 반대로 나를 위해 누군가가 대신 살인을 저지른다고 해도 고맙기보다는 무섭겠죠. 그 사람의 행동이 사랑으로 느껴진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사람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괴로울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석고는 화선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그런 선택을 했지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화선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남아있는 화선과 화선의 조카는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았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어요.
윤: 저와는 의견이 조금 다르시네요. 화선의 죄책감은 어쩔 수 없지만 저는 석고의 행동이 이해가 가요. 석고가 자살하려는 순간 화선이 초인종을 눌렀고 그녀 덕분에 석고는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았잖아요. 석고가 그런 선택을 했던 이유는,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화선을 위해 그녀에게도 새로운 삶을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예를 들어 만약 제 가족이 화선과 같은 상황에 처했고 제가 석고처럼 천재였다면 저 역시 가족을 도울 거예요. 대신 살인을 할 수는 없다고 해도 가족이 정상참작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죠.

   
 

화선을 위한 석고의 행동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현실의 사랑은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윤: 현실에서는 석고처럼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죠. 영화를 보는 동안 나를 비롯한 관객들이 왜 울었을까 생각해보면 ‘없는 것’에 대한 동경과 감동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정: 네, 맞아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매체에 게시된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사랑을 찾을 수 없으니까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이상적인 모습에 더 열광하는 거죠.
윤: 대학교 1학년 때 ‘우리시대에 사랑이 있을까’라는 주제로 강연한 세미나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는 연애를 하면 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그것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쉽게 만났다가 금방 헤어지는 걸 보면 안타깝죠. 또 결혼정보회사 등을 보면 조건에 따라 가입자를 1등급부터 9등급으로 나누잖아요. 이런 걸 보면 마치 사람을 사랑이라는 시장에 팔려고 전시해놓은 상품처럼 취급하는 느낌이 들어요.
정: 실제로 주위를 둘러봐도 정말 좋아서 연애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내 여자친구는, 내 남자친구는 이 정도는 돼야 해”라고 조건을 걸고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을 사랑하려는 거죠. 결국 그 사람이 좋아서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먼저 사랑한다고 해야 할까요. 석고는 비록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이라는 죄를 지었지만, 그 바탕에는 화선의 행복만을 바랐던 순수한 마음이 있었죠. 그래서 그의 헌신적인 사랑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박지수 기자  rhehf333@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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